고전의 매력,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운 것이다!
서사가 넘쳐나는 시대다. 그럼에도 고전은 늘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헨젤과 그레텔, 피리 부는 사나이, 빨간 모자를 보고 자라지 않은 어른이 어디 있을까. 어떤 내용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상상력의 세계는 우리의 무의식을 꽉 잡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 그림책이나 만화로 한 번쯤은 접해본 적 있는 말 그대로의 ‘고전’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이러한 환상의 세계를 만끽하며 자랐고, 그렇기에 이미 낡은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자. 이렇게 보고, 즐길 거리가 많은 시대에도 어린아이들은 고전을 읽으며 자라난다.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읽히는 이야기라면 그 구조가 얼마나 완벽하다는 의미인가.
그러한 맥락에서 아이디어가 다 소진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창작자들은 늘 아이디어와 싸우고, 더 나은 것,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새로운 것을 찾아 쓰고 그려왔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찾아보면 세상에 없던 것들도 우리 곁에 존재하기는 하겠으나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틈새시장을 공략하기에 우리의 머리는 수많은 레퍼런스로 가득 차 있어서 새로운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럴 때 이 책은 창작자의 구원투수가 되어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오래된 걸 재해석하는 방식’은 창작자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고정관념을 깨주고,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사고를 선물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을 잘 다룸으로써 우리는 평범한 아이디어를 괜찮은 아이디어로, 좋은 작품을 더 훌륭한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시각 요소를 통해
캐릭터 디자인 완전정복하기
이 책은 말 그대로 재해석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재해석을 할 때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보다도 기존의 캐릭터를 다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종의 기술이 필요하다. 『판타지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럴 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내러티브 디자인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야기의 기능, 그리고 캐릭터가 살아가는 배경이나 의상 등과 관련이 있는 이러한 내러티브 디자인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고전 동화가 가진 이야기의 맥락과 맞물려 우리에게 신선한 캐릭터를 선보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굳이 A부터 Z까지 모든 걸 설정하지 않아도, 있던 것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도 멋진 캐릭터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걸 이미 검증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예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캐릭터를 만들 때 현실 사회나 지리와 함께 맞물려 그리는 기법을 설명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는 반드시 ‘문화 배경’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부분을 기존 고전 캐릭터에 반영해 재해석하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곰 세 마리 이야기에 등장하는 골디락스는 갱단, 조폭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프랑스 고전인 빨간 모자의 주인공인 빨간 보자는 이란의 전통 의상을 입고, 이란 소녀의 강인함과 자유를 보여주는 전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프로 작가들이 그려내는 고전의 변화무쌍함은 우리를 새로운 일러스트레이션의 세계까지 도달하게 만든다.
프로 작가의 레퍼런스를 주로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릴 때 가장 기초가 되는 공간감, 색상, 색조, 채도, 대비에 관한 내용도 알차게 구석구석 담아 두었다. 그래서 기초를 더 탄탄하게 쌓고 싶은 아마추어라면 이 책 한 권으로 모든 내용을 다 배울 수 있고,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온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라면 기본기를 다시 한번 다잡고 가는 기회로 활용하기에 유용하다. 기본기부터 한 장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완성되는 그 모든 과정을 이 책 한 권으로 만나 볼 수 있다는 점은 『판타지 동화 일러스트레이션』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자부한다.
그림에도 서사가 필요하다
일러스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림에 왜 서사가 필요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완성도 높은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촘촘한 서사와, 서사를 반영하는 장면 묘사는 필수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서사를 만들 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작가의 머릿속에서 설정되어야 한다면 그 디테일을 잡아 나가는 데만 해도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있는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 서사를 담아낸다면 우리가 모두 다 아는 이야기이므로 그림의 잘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관객이 상상해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고전 동화뿐만이 아니라 단테의 〈인페르노〉 같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가지고 와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일러스트레이션 속에서 어떤 식으로 세계관을 구축해야 하는지, 그 배경 속 지리와 역사, 사람, 생물을 어떻게 포함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일러스트레이션에 얼마나 멋진 깊이와 밀도를 더해 주는지도 구경할 수 있다. 배경부터 만들고 배치하거나, 캐릭터를 구상하고 그 주위에 배경을 그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일러스트레이션을 어떻게 구상해야 하는지에 관한 기법을 알차게 담았다.
이미지 속 서사는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아무리 한 장의 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할지라도 서사가 있어야만 그 장면은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독창적인 서사, 그리고 그 세계관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살피며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해 나간다면 멋진 프로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