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선생은 먼 시대 인물이 아니다. 불과 이백삼십여 년 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정치가로 입신하여 두 차례 유배를 당하셨으나 특유의 기품으로 추사체를 정립하셨다. 이 글은 선생의 학문과 예술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살펴 쓴 시집이다. 천단淺短하기 그지없다. 추사 예술세계의 특장은 학예일치學藝一致의 예술관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기저에 다져진 추사의 고매한 인격에 있다. 추사의 경이로운 예술일체는 각고의 노력과 함께 추사의 고결한 인격이 빚어낸 산물이라는 점이다. 가혹한 역경과 환란에 결코 굴하지 않은 투혼의 결과이기도 하다. 추사, 진실로 추사야말로 그 누구와도 비견키 어려운 참된 인격자, 참된 예술인으로서의 선경의 모본, 그 자체이다.
현재 경기도 과천이나 제주도 대정마을, 고향 예산에서 추사를 기리는 행사가 다채롭다. 세 곳 모두 웅장한 박물관이 서 있다. 특히 추사에 관한 작품집들이 무수히 많다. 면구하다. 예산, 나의 향리에서 늘 뵙는 선생의 생애를 경홀히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부족한 이 글은 그에의 결과물이다. 이 시집을 쓰면서 절감한 사실이 있다. 우리 한민족 역사에서 선생처럼 시, 서, 화, 금석문, 경학, 고증학, 불교학, 감상, 등등에 있어 당대에 이미 청나라를 압도하고 학예의 최고경지를 개척한 예술인은 없다는 심혼의 공명이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그러한 일대의 통유通儒, 추사의 삶과 예술과 사상을 살펴 시편으로 쓰기란 두려운 일이다. 나같이 무른 독필禿筆이 어찌 한 민족 오천년 역사에서 최고 걸출한 예술인을 조망한단 말인가. 심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동향同鄕아닌가. 오로지 이에 빗대어 떨며 펜을 잡는다. 고택 근처에 주택을 마련하곤 수없이 고택엘 간다. 갈 때마다 선생 묘소에 절 올린다. 그건 수시로 내가 공公께 올리는 제사다. 무릎 꿇고 삼가 절 올리며 반야般若의 업을 닦으신 추사 예술혼의 분기奮起를 빌고 빌면서 한 없이 미흡한 이 시편들을 썼다.
원컨대 선생이시여, 부디 시간층위 뚫고 무덤에서 일어나시라. 예전처럼 다시 붓 잡으시고 꼿꼿한 지조와 기개, 불요불굴의 정신력과 불타는 예술혼으로 오시라. 오셔서 영혼의 새벽 등불 밝혀 혼돈의 이 나라와 아름다운 우리 예산을 비추시라. 추사여, 겨레의 혼불이시여!
2024. 5.
산정 신익선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