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가벼운 은퇴자의 여행길,
사진 속에 담긴 순간의 기록들
이 책의 작가는 정년퇴직한 소아과 의사로, 신생아 진료 세부전문의이다. 더불어 전 세브란스 병원장, 하나로 의료재단 원장이었다. 평생 신생아 치료에 매진해 왔던 의사로서 치열한 인생 1막을 기억 속에 접어 두고 이제 아마추어 사진사이자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동안 학회 틈틈이 또는 퇴직 후 여행에서 찍어 둔 유럽의 풍경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작가의 사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의과대학 사진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실험실 한 구석 암실에서 통금시간도 잊은 채 직접 인화하던 기억이 의과대학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사진반에서는 무의촌 의료현장, 인턴방 24시와 같은 주제로 해마다 사진전을 열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사진이라는 취미는 의사 생활 내내 어디든 다녀올 기회가 생기면 꼭 사진기를 챙겨 다니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 사진학 과정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틈틈이 필름과 사진 폴더를 차곡차곡 채워 오다가 퇴직 후 찾았던 유럽 여행길에서 원 없이 사진을 찍어 올 수 있었다.
이 책에는 학회 중에 잠깐 들른 로마로부터 시작해, 은퇴 후 본격적인 여행을 즐겼던 스페인, 시칠리아, 프로방스, 그리스 여행을 모았다. 여행 전문가가 함께하여 안내한 여행이어서, 유명 관광지와 개성 있는 소도시 여행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모두가 꿈꾸는 유럽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여정이다.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서 몇천 장에 이르는 사진을 찍었고,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도 담담하게 기록했다.
사진을 추리고 글을 정리하며 책의 주제는 ‘길’이 되었다. 인생 후반기에 접어든 은퇴자의 발걸음 가벼운 나그넷길이다. 최희준의 노래 〈하숙생〉에서처럼,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생길을 돌아보며 ‘길’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기록했다. 책의 제목인 ‘라 스트라다(La Strada)’는 이탈리아어로 ‘길’을 의미하며, 순수한 젤소미나의 모습과 애잔한 트럼펫 연주가 인상 깊었던 옛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역사, 종교, 건축, 영화, 미술, 음악 이야기가 노의사의 여행기를 풍성하게 채워 주고 있다. 이 책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사랑했던 예술가와 위대한 인물들의 흔적을 마주친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나는 가우디, 아를에서 만나는 고흐, 무쟁에서 만나는 피카소, 그리고 아피아 가도와 몰타 섬에서 만나는 사도 바울. 앞서 길을 걸었던 치열한 인생들의 고뇌와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추천사를 쓴 박기호 사진작가는 이 책의 사진들에 대해, 자신만의 호기심과 생각이 담겨 있는 사진이라고 평했다. 상업 사진과 같이 보기에 화려한 사진보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감동을 전해 줄 때가 있다. 편안하게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 들게도 한다. 직접 가 볼 수 없어도 이 책을 통해 유럽의 곳곳을 함께 유유자적 거닐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