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하우스보이에서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가 되기까지
굳은 믿음과 신념으로 신앙의 길을 걸어온 김장환 목사의 이야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극동방송 1층 벽에 새겨진 이 문장은 2023년 구순을 맞은 김장환 목사의 모토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설교학자인 아신대 신성욱 교수가 집필한 『김장환 목사 평전』은 1부 ‘복음전도자 김장환 목사’, 2부 ‘전파 선교의 첨병 극동방송’, 3부 ‘내가 본 김장환 목사’로 구성돼 있다. 입지전적인 그의 삶을 보여주듯 화보 112페이지 포함 1천 페이지가 훨씬 넘는 두툼한 분량이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회자 중 한 사람이자 세계침례교연맹(BWA) 총회장을 지내는 등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글로벌 리더 김장환 목사의 이야기는 비단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어른이 없는 이 시대에 대표적인 ‘영적 스승’이자 우리 사회의 원로인 김장환 목사의 일대기는 읽을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저자는 6·25 전쟁 당시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이었던 소년 장환이 한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건너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수원기독병원을 개원하고 기독회관을 개관했으며, 1984년에는 수원중앙양로원을 개원하여 복음전파에 힘썼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수원 YFC’를 창설하고 한국 십대선교회(YFC) 총재를 지내며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또한 극동방송을 맡아 발전시키고,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서 크게 활약하는 등 한국과 세계 교회의 역사에 자취를 남기는 위치에 오르기까지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사용하셨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김장환의 어린 시절은 고난과 연단의 준비 과정이었다. 그는 1934년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중학교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장환은 열심히 공부해 70명 중 5명만 합격할 만큼 경쟁률 높은 6년제 수원농림중학교에 합격했다. 방과 후에는 집안일을 돕고 쇠꼴도 베어 먹이고 나무를 하러 다니고 밭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중2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편은 더 어려워졌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고민도 많아졌다.
어린 시절 그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을 꿈꿨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상 등록금이 면제되는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시험을 치르러 갔다. 그는 서울에 있는 학교에 가서야 전날(1950. 6. 25) 북한이 쳐들어와 시험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전쟁의 와중에 가족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이후 3년간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고 그의 미래도 암울해 보였다.
그런데 믿지 않는 가정에서 소망 없이 살아가던 그에게 6·25전쟁은 그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초콜릿이나 껌을 얻기 위해 미군 주둔지 앞을 서성이던 그에게 한 미군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 것이다. 소년 장환은 그의 난로에 불을 지펴준 뒤, 지저분한 막사를 깔끔히 정리해놓았다. 그러자 그 미군은 “원더풀”을 연발하더니 그를 ‘하우스보이’로 채용했다.
많은 친구 가운데 그가 미군의 눈에 띈 것은 어찌 보면 기적이었다. 그는 영어를 더 배우고 싶어서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동하는 미군 부대를 따라 경산으로 향했다. 정식 하우스보이가 된 그에게는 ‘빌리 킴(Billy Kim)’이라는 새 이름이 생겼고, 그곳에서 평생의 은인 칼 파워스 상사를 만났다. 전쟁통에 부모와 생이별한 어린이들을 보고 마음 아파하던 파워스 상사는 한 명의 아이라도 구해내야겠다고 결심했고, 평소 눈여겨본 장환을 미국으로 데려가 공부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 학교인 ‘밥 존스’에서 영어도 잘 못하고 신앙도 없는 장환의 입학을 허락할지는 미지수였다.
1951년 5월 25일, 마침내 입학허가서가 도착했다. 장환의 어머니는 낯선 미군을 전적으로 믿고 소중한 막내아들을 맡겼다. 장환은 영어사전과 옷 몇 벌, 그리고 향수병을 낫게 해준다며 어머니가 담아주신 흙 한 봉지를 챙겨 마침내 미국행 배에 올랐다.
그런데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 땅에 왔지만, 영어가 딸리니 공부도 힘들고 기숙사에서 나오는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고향 생각, 어머니 생각에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야 하나 고민 중일 때 제리 메이저라는 신학생이 장환을 찾아왔다. 그는 다짜고짜 요한복음 3장 16절을 펼치고 읽어보라고 했다. 성경을 읽고 난 뒤 예수를 믿으면 고향 생각도 사라지느냐고 묻는 장환에게 제리 메이저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네 향수병을 치유해주실 뿐 아니라 기쁨도 주시고 평안도 주시고 사명도 주실 거야.” 그 말에 장환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영접기도를 했다. 그 순간,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거짓말처럼 향수병이 사라지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쳤다. 그날 하나님은 그렇게 김장환, 빌리 킴을 찾아오셨고, 빌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빌리는 중3으로 입학한 첫 학기에는 여러모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영어 실력도 눈에 띄게 향상돼 교내 웅변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 뒤 학교 대표로 나간 주대회에서도 1등 상을 받았고, 전국대회에 나가서도 1등에 해당하는 ‘아이젠하워상’을 받았다.
1955년 어느 날, 뉴욕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에 참석한 빌리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처럼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 뒤 빌리는 “신학을 공부하고 고국에 돌아가 가난한 젊은이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밥 존스 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졸업한 학교에 빌리 킴이 입학한 것이다.
대학 시절 그는 주말마다 ‘전도여행’을 다니며 설교했고, 같은 고등학교에서 만난 트루디와 1958년 결혼하고 이듬해에 석사학위를 받고 목사가 되어 금의환향해 누구보다 먼저 어머니와 형제들을 전도해 구원받게 했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김장환 목사의 유별난 고향 수원 사랑과 초기 사역, 천생연분 아내 트루디 사모의 다양한 사역, 자녀 교육, 수원중앙침례교회 개척 후 대형교회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 한국 십대선교회(YFC)를 통한 제자 양성, 해외 전도사역,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통역 이후 확대된 사역과 2023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 50주년 기념대회에 이르기까지 복음전도자 김장환 목사의 삶이 상세히 담겨 있다.
특히 한국 기독교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대회로 기록된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에서 통역을 맡은 일은 김장환 목사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후 그는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많은 전도대회에 주 강사로 초청됐고, ‘섭외 1순위’ 강사가 됐다. 김장환 목사에게 대회 통역을 부탁했던 헨리 홀리 목사는 대회가 끝난 뒤 “마치 손에 장갑을 끼는 것처럼 두 사람은 완전한 일치 속에 움직였다. (…) 빌리 그레이엄이 영어로 말하고 빌리 킴이 한국어로 통역하던 모습은 무척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모든 몸짓과 목소리의 억양은 똑같이 재현됐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고 감탄했다.
저자는 이 평전을 쓰기 위해 김장환 목사와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를 했고, 관련된 책과 자료들을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오랜 시간 김장환 목사와 교제를 나눠온 지인 수십 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등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인터뷰한 내용은 3부 ‘내가 본 김장환 목사’에 실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생전에 여러 미국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듯 김장환 목사도 박정희 대통령에서부터 현재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러 한국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왔다. 아울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의장 등 해외 지도자들, 조중건 대한항공 고문·김인득 벽산그룹 회장·김연준 한양대 총장 등 경제계 인사, 릭 워렌 목사 등 해외 교계 리더 등과 맺은 다양한 인연도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설교학자답게 ‘김장환 목사의 설교 세계’를 별도로 상세히 분석하고 있으며, 그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 장례예배 추도사와 휘튼 대학 졸업식 설교 전문을 소개했다.
그리고 김장환 목사의 장점으로 △받은 은혜만 기억하는 사람 △근검절약으로 소문난 수원 구두쇠 △정직과 근면을 생활화한 사람 △복음 증거에 목숨을 건 사람 △포용력 있는 겸손한 사람 △활력 넘치는 생기 있는 사람 △탁월한 기억력과 전달력을 지닌 사람 △시간 관리에 철저한 부지런한 사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의리 있는 사람 △겸손으로 허리를 동인 사람 등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부 부정적 평가에 대해 반박하면서, 그의 리더십 비밀을 ‘GROWTH’라는 영어 단어로 풀어내는 것으로 에필로그를 장식하고 있다.
저자는 평전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극동방송과 김장환 목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는데,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교제를 나눈 김장환 목사는 “가히 감동과 존경 자체였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김장환 목사는 지금껏 필자가 알아온 어떤 지도자보다 더 많은 장점을 지닌 분이다. ‘탁월한 설교 실력’은 물론 ‘깊은 애국심’과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 ‘특출한 인품’, ‘따뜻한 인간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장환 목사가 어째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적인 인맥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도 남는다”고 설명한다. 또한 “하나님은 극동방송이라는 전파매체를 통해 복음을 듣지 못하는 지역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김장환’이라는 하우스보이를 만세 전에 선택하셨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한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이 김장환 목사의 삶에서 역사하는 순간순간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