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완전히 이해된 적 없는 "카프카"라는 세계
질문과 수수께끼 그 자체가 답인 역설의 세계를 향하여
문학과 철학의 만남으로 나의 삶과 세계를 확장하는 법,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6: 프란츠 카프카, 『변신 ㆍ 어느 개의 연구』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 여섯 번째 권으로 출간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ㆍ어느 개의 연구』에서 도슨트 이진경은 답을 지우거나 아무 답도 제시하지 않고 끝나버리는 카프카의 소설들이 말하는 바가 무엇일지 얘기한다. 카프카는 닫힌 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역설과 익살로 묘사함으로써 세계를 비판하며, 세계에 저항하고 투쟁했다. 어둠 속의 삶, 소수자의 삶에 시선을 두고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 그의 소설은, 존재했으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하고, 뻔하다고 여겼던 세계를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대면하도록 만든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모든 질문은
결국 "나의 삶"으로 수렴된다
문학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경험하게 하고, 만나지 못한 인물을 만나게 하며, 겪지 못한 일을 체험하게 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작가와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 세계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온갖 정보와 소음 속에서 더욱 축소될 것이다. 문학의 세계가 만드는,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이 완충지대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틈을 보여 준다. 그러나 문학의 상징과 비유는 독자들을 난관에 빠뜨리기도 한다. 작품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은 철학과 인문학자의 시각을 빌려 세계문학의 고전을 읽게 해 준다. 이를 통해 저마다의 읽기가 수없이 많은 갈래를 만들고, 거기서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겨난다.
〈그린비 도슨트 세계문학〉의 해설은 문학에 딸린 부록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한 권의 책과 같은 가치를 담고 있다. 이는 문학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독자들과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개척하려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특히 해설이 시작되는 뒤표지에서부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문학과 맞물려 있는 철학 혹은 사유의 긴밀함을 표현했다.
“내가 죽어 가는 것은 굶주림이 아니라 고독 때문인 것 같았다. 아무도, 땅 밑의 누구도, 땅 위의 누구도, 공중의 누구도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어느 개의 연구」 중에서)
『변신ㆍ어느 개의 연구』에는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던지며 시작하는 단편 「프로메테우스」를 시작으로, 한없이 연기되는 시간적 끝없음을 한없이 넓은 공간의 공간적 끝없음으로 바꾼 상상력을 불어넣은 「만리장성을 쌓을 때」, 최대한의 높이에 이르려는 욕망의 무의미함을 다룬 「도시의 문장」, 대중의 몰이해 속에서도 자신의 단식을 예술적 경지까지 이어 가려던 「단식 광대」, 보던 대로만 보는 시선 속에서 없는 존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는 「양동이를 탄 사내」, 배타적 공동체에 대한 단상 「공동체」, 이승과 저승 사이를 떠도는 「사냥꾼 그라쿠스」, 바로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사건을 겪는 「시골 의사」를 비롯하여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흉측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이야기 「변신」, 인간을 모방하다가 인간의 말까지 하게 된 원숭이를 등장시킨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연구자 내지는 철학자처럼 생각하는 개가 등장하는 「어느 개의 연구」 등 총 24편의 작품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이어져 있다. 종착지에 도달한 줄 알았는데 둘러보니 시작점으로 돌아와 있는, 마치 "끝없는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카프카의 소망처럼.
닫힌 세계에 낯선 균열을 만든
카프카가 보여 주는 매혹적인 출구들
『변신ㆍ어느 개의 연구』에 실린 24편의 작품에서 주목한 것은 "바깥 혹은 외부"이다. 짧고 간결한 작품부터 장편에 이르기까지 카프카의 시선은 언제나 바깥을 향해 있다. 관심의 바깥, 감각의 바깥, 인식의 바깥. 세계의 바깥, 법의 바깥 등. 바깥이란 눈 밖에 난 것, 생각 밖에 있는 것, 뜻밖에 오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바로 옆에 있었으나 보지 못했던 것, 눈으로 보았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 무언가 해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다. 이것들은 닫힌 세상에서 나가기 위한 출구들이다.
“몇몇 작품을 발표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발표하지 않았고, 발표된 작품들 또한 독자의 시선 바깥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지요. 그것은 사실 스스로 택한 "운명"이기도 합니다. 강한 의미의 예술이란 널리 공유된 감각이나 통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면 안 되니까요. 그렇기에 대중의 지지가 있을 때에도 실은 충분히 이해되기 힘든 것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카프카는 고독이 자신에게 운명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카프카는 환한 대낮의 어둠 속에 있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그 고독은 자기만의 남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자의 고독이 아니라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으로 그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고, 사람들이 열지 않는 출구로 그들이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빠져 있는 내면주의자의 고독이나 자신만의 자유에 심취한 "실존주의자"의 고독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 캄캄함 어둠에 갇힌 이들과 더불어 닫힌 세계의 출구를 찾는 작가였습니다.”(도슨트 이진경과 함께 읽는 『변신ㆍ어느 개의 연구』 해설 중에서)
즉 카프카는 닫힌 세계에 끊임없이 낯선 출구를 낸 작가인 것이다. 그가 낸 출구로 언뜻 보이는 풍경들은 낯설 뿐 아니라 황량한 대지나 악몽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질문이며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수수께끼는 세계 바깥에 있는 것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매혹적이다. 매혹이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 카프카는 닫힌 세계를 끊임없이 낯설고 새롭게 만들며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무수한 뱃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끌던 세이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