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 이래 한중간의 국경문제는 1712년 백두산정계에서부터 유래하였다. 압록강ㆍ두만강을 경계로 함을 정계비에 명문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 지역의 국경을 정한 것에 국경사의 의미가 크다. 이는 그 이후 광서(光緖) 감계담판(1885ㆍ1887), 1905~1907년 중일간의 ‘간도문제’ 담판 및 1958~1964년 중국ㆍ북한간의 국경문제 담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간 한중 양국 학계의 국경문제 주장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중국 학계의 주요 문제점은 정계비의 위치를 놓고 이른바 백두산설과 소백산설이 존재하는 것이며, 후자의 경우 정계비가 소백산(천지 동남쪽 30㎞에 있는 산)에 세워졌던 것을 백두산 천지 근처로 옮겨졌다는 이른바 ‘이비설(移碑說)’이 존재하였다. 한국 학계의 경우, 비문의 이른바 ‘동위토문’에 대한 해석에 착오가 발견되며, 식민지시대 일본 학자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토문이 두만이 아니라 송화강 상류라는 2강설이 존재하였다. 이는 두만강 이북에 위치한 간도(오늘날 중국 연변의 일부) 지역의 영토귀속 문제와도 직결된 것이다.
저자는 위와 같은 정계비 이비설과 토문ㆍ두만 2강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자료를 확보하게 된 것이 이번 책의 큰 성과로 들고 있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 소장된 「천하제국도(天下諸國圖)」에 수록된 「목극등정계도」는 한국측 정계 지도이고, 나이토 코난(內藤湖南)이 성경(盛京) 상봉각(祥鳳閣)에서 발견한 ‘만문장백산도’는 중국측 관련 지도이다. 저자는 자료에 대한 발견 또는 재발견을 통하여 백두산정계 연구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고 백두산설의 사료적 근거를 더욱 충실히 할 수 있었다.
책의 제1편은 고지도ㆍ지리지에 대한 연구이다. 중국측의 ‘만문장백산도’, 한국측의 「목극등정계도」ㆍ「서북계도」 등에 대한 고증을 통하여, 지도의 제작 연대를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정계 연구에서의 높은 사료적 가치에 대해 재천명하였다. 또한 관찬 지리지를 통하여, 조선시대 지리명칭으로서의 ‘장백산’과 ‘백두산’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목극등 정계 이전 조선의 범위에 속하지 않던 백두산 이남 지리범위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제2편은 백두산정계 연구이다. 한중 양측 고지도ㆍ지리지 및 조선측 일기자료, 예컨대 역관 김지남의 「북정록」 등을 통하여, 목극등이 비석을 세운 입비처의 위치, 그가 정한 두만강 수원ㆍ압록강 수원 및 그의 하산 노선 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이른바 ‘소백산설’에 대해 비판하였다. 아울러 청과 조선의 국경의식과 국경분쟁에 대한 처리 방식을 종번관계의 구축에서 붕괴까지의 서로 다른 양상을 통해 살펴보았다.
제3편은 중일간 간도문제에 대한 연구이다. 일본의 ‘간도(間島)’지리 개념을 통한 확장 시도를 사이토 스에지로(齋藤季治郞)가 조선통감부에 올린 「간도시찰보고서」를 통해 살펴보았으며, 해방 후 한국 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의 「백두산정계비」의 이른바 간도 ‘중립지대론’의 학술적 근거를 분석함으로써, 그가 두만강 경계를 극구 부정하고 ‘중립지대’론을 펼친 것은 일본 정부의 간도확장 정책에 일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침략성에 대한 비판이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이 밖에 ‘간도협약’의 부도인 ‘도문강북잡거구역도’의 모본과 중일간의 담판 및 중국 산동(山東) 이민이 위주가 된 ‘한변외(韓邊外)’와 간도문제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 책의 학술적 성과는 소백산설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백두산정계에 대한 자료를 재발견함으로써 연구의 영역을 넓힌 것을 꼽을 수 있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나이토 코난이 1905년 성경 상봉각에서 발견한 ‘만문장백산도’에 대한 재발견으로써, 이를 조선측 지도 자료 예컨대 콜레주 드 프랑스에 소장된 「천하제국도」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여지도」 속의 「목극등정계도」 및 김지남의 「북정록」 등과 비교 분석하여, ‘만문장백산도’의 사료적 가치를 재천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설의 근거를 더욱 확고히 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중국 학계에서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백산 이비설’에 대한 비판으로 이비설의 근거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 착오의 원인이 서로 다른 판본 자료에 대한 오해, 예컨대 어윤강(서두수임)에서 백두산까지 300리를 5일(승정원일기)에 도착하였음을 5리(숙종실록)로 착각한 데 따른 문제점, 목극등이 두만강을 따라 내려갔는데, “그 물이 남증산 근처에 와서 합쳤다.”(「북정록」의 국편 필사본)라는 어구를 그 반대로, “그 물이 남증산 근처에 와서 합치지 않았다”(「북정록」의 백산문화본)로 착각한데 따른 문제점, 그리고 백두산 지역의 산과 하천의 지리위치에 대한 착각 등에 있음을 들어, 이비설이 성립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끝으로, 중일간의 ‘간도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한 것도 이 책의 성과이다. 특히 한국 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일본 학자인 시노다 지사쿠의 간도 ‘중립지대론’의 학술적 근거가 잘못되었음을 분석함과 동시에 ‘간도협약’의 부도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그 속에 숨어 있는 일본의 침략야욕에 대해 폭로하였다. 아울러 중국측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간도협약’ 부도에 ‘간도’ 명칭이 사라진 점, 토문ㆍ두만 2강설이 극복되고 중국측 정식 명칭인 ‘도문강(圖們江)’으로 표기된 점 등에 대해 논술하였다. 이 책은 1712년 백두산정계비 수립으로부터 한중 국경사 및 간도문제 등에 대한 한중일 삼국의 사료를 종합적으로 이용하고 저자의 현지답사 성과를 결합하여, 국경사의 연구 수준을 한 단계 진전시킨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