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고릴라 시점’이 이끌어내는 무한한 공감!
야심차게 실화를 재창조한 가장 놀라운 상상력
일본의 대표적인 문예지 「다빈치」는 『고릴라 재판의 날』을 플래티넘 수상작으로 뽑으며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고릴라가 법정에서 싸우다니 굉장하잖아, 하고 웃어버린 것도 잠시. 그 안에 마이너리티를 향한 차별과 편견을, 인권의 정의를, 그리고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담고 있는 엄청난 사회소설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여성의 청춘 이야기이자 본격 법정 미스터리이며 철학 SF이기도 하다.” 이 한 권의 소설이 담아낸 세계의 다채로움과 깊이를 함축한 대사,
『고릴라 재판의 날』의 주인공은 인간 수준의 높은 지능을 지닌 고릴라 로즈다. 로즈는 어릴 때부터 배운 수어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해 인간과 대화한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곧 인간의 감정과 문화를 흡수한다는 뜻이었기에, 때때로 동족인 고릴라들과 다른 자신을 자각하기도 한다. 이런 고민과 인간 사회에 대한 동경이 더해져, 로즈는 정글을 떠나 미국행을 선택한다.
센서가 움직임을 감지해 손동작을 목소리로 바꿔 주는 장갑까지 손에 넣게 되자 로즈는 곳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유명인사가 된다. 그런 한편 로즈는 새 보금자리인 동물원에서 수컷 고릴라 오마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고릴라 우리에 어린아이가 들어가자 동물원 측이 아이의 안전을 이유로 오마리를 사살한 것. 죄 없는 남편을 잃은 것을 납득할 수 없었던 로즈는 동물원, 아니 인간들의 정의라는 것을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기로 결심한다.
발상부터 기상천외한 ‘1인칭 고릴라 시점’의 이 작품은 놀랍게도 실화에 깊이 기반하고 있다. 인간과 대화하는 고릴라, 그리고 인간의 부주의 때문에 동물원에서 사살된 고릴라 모두 실존했기 때문. 그중 전자는 2000가지 이상의 수어를 구사하며 감정과 의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고릴라 코코다.
“우리는 고릴라에 대한 수많은 결례를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소설가 교코쿠 나츠히코(『우부메의 여름』)
코코는 영화를 감상하거나 반려 고양이를 키우기도 했으며 번식을 거부해 수컷 고릴라와 짝을 짓지 않고 혼자 살았다. 또 처음 말을 배웠을 때 “나는 착한 고릴라”라고 말하다 나이가 든 후 “나는 사람”이라고 정정해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일화들 때문에 인간의 삶을 학습시켜 고릴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하는 게 과연 옳은지 우려 및 비판하는 시각들도 적지 않았다.
하람베 사건은 2016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동물원에서 4살 남자아이가 고릴라 우리에 빠지자 동물원 측에서 아이의 안전을 위해 고릴라 하람베를 사살한 일을 말한다. 하람베는 아이를 해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데다 멸종 위기종인 로랜드고릴라였다. 후폭풍은 거셌다. 사람들은 담장의 높이를 낮게 만든 동물원과 보호자인 부모의 태만을 비판했다. 부모를 처벌해야 한다는 청원 운동까지 벌어져 수십만 명이 서명했다. 논의는 한발 더 나아가 야생동물을 평생 우리에 가두는 동물원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게 되었다.
이 두 사례는 작가 스도 코토리의 상상력과 통찰의 힘으로 인류 보편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주요 특성인 ‘언어’를 구사하는 고릴라를 통해, 동물권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 모든 인간은 천부적으로 존엄하다. 피부색이나 장애 유무를 비롯해 어떤 것으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때문에 다양성은 곧 존엄성의 핵심이 된다.
인간 사회의 일원처럼 대접받다 언제든 총알을 맞고 죽을 수 있는 외부자로 배척받는 소설 속 로즈는 다양성과 존엄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러나 강인하고 현명한 로즈는 어떤 순간에도 인간 중심 세계의 피해자로만 남기를 거부한다. 스스로가 선택한 길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너무도 인간적인 고릴라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감동과 함께 어느덧 샘솟는 용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피, 땀, 눈물 있음! 휴먼드라마 있음! 두뇌싸움 있음!
사랑 있음! 이것이 바로 종합 엔터테인먼트다.” -일본 독자 리뷰
예측불허. 『고릴라 재판의 날』을 정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어다. 소재도 주인공도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데뷔작은 이야기의 힘으로 또 한 번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했다. 앞서 서술한 대로 이 소설이 담고 있는 통찰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책을 집어 든 독자는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펼친다, 읽는다, 끊임없이 읽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아, 재미있었다.” 웃음과 눈물, 스릴이 공존하는 탁월한 엔터테인먼트. 이 책의 또 다른 정체성이다. 낯설지만 반가운 손님 같은 깜짝 놀랄 문학과의 만남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