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심가〉, 선죽교, 영웅담 등
신화와 허구가 가려버린 정몽주의 진짜 삶
고려를 마지막까지 지키려다 태종 이방원의 손에 죽어나간 정몽주. 그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충절의 화신’으로 추앙을 받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여기에 역사적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후대에 덧붙여지면서 정몽주의 삶은 점점 신화가 되어갔다. 그 유명한 〈단심가〉나, 정몽주가 죽은 자리에 대나무가 솟아났다는 ‘선죽교’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상식처럼 여기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각종 위인전에서 등장하는 어린 시절 미래의 장인에게 글을 배웠다는 일화도 허구이고, 구사일생의 위기를 넘어 외교 임무를 수행했다는 영웅담도 과장되어 알려졌다.
이러한 근거 없는 허구가 역사적 사실인 양 받아들여지면서 정몽주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데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신화화는 정몽주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 제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정몽주 다시 읽기》는 정몽주의 삶을 보여주기에 앞서 그에 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논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이, 조식 등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가세한 이 논쟁은 그가 정말 충신이었는지, 그가 훌륭한 성리학자였는지 등 주제가 다양했고, 이는 정몽주의 삶이 입체적이었음을 시사하며 우리의 편견을 벗긴다. 그러고 나서 이 책은 역사 기록에 남아 있는 정몽주의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되짚어봄으로써 인간 정몽주의 참모습을 이해해나간다. 특히 정몽주가 직접 쓴 시들을 곳곳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그의 생애와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수성가의 표상
탁월한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 성장하다
우리가 아는 정몽주의 모습은 어떤가? 그가 거물로 성장해 이성계를 비롯한 혁명 세력에 맞서 고려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모습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은가? 당연한 말이지만 정몽주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알려면 그가 어떤 경험을 하며 성장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정몽주의 성장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정몽주는 ‘성리학자’, ‘군사 행정가’, ‘외교관’으로서 두각을 나타내며 고려 말 핵심 인물로 발돋움했다. ‘성리학자’로서 선진 학문인 성리학의 교육에 큰 공로를 세웠고,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였던 이색은 그를 우리나라 성리학의 조상이란 뜻인 ‘동방이학의 조(祖)’로 일컫기도 했다. 또한 정몽주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이 잦았던 당시 ‘군사 행정가’로서 세 차례나 종군했는데, 특히 이성계가 직접 발탁할 정도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종군 시기는 정몽주가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주선한 때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외교관’으로서는 친명(明) 외교 노선을 주장하며 직접 외교관으로 나서 당시 경색되어 있던 명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파견되어 왜구 침입을 자제시킬 것을 요청하고, 고려인 포로를 송환해오는 성과를 거두었다.
눈에 띄는 것은 정몽주의 출신이 중앙 정계의 유력한 세력과 연결될 만한 고리가 전혀 없는 한미한 집안이었다는 점이다. 귀족적 성격이 강했던 고려 사회에서 정몽주의 출신 배경은 요즘 말로 하면 ‘흙수저’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정몽주의 출세는 오로지 그 자신의 능력으로 이뤄낸 성과였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나라와 민생이라는 대의를 위해
정도와 권도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개혁가
사람이 행동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정도(正道)와 권도(權道)가 있다. 정도는 말 그대로 바른길을 가는 것, 즉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말한다. 반면 권도는 정도를 지키기 어려울 때 목적 달성을 위해 형편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정몽주는 탁월한 정치가이자 행정가로서 고려 말의 정치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몽주가 항상 정도만을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 〈8장, 다시 정몽주는 어떤 사람인가?〉에서
이렇게 고려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정몽주는 고려 말 혼란기에도 자신의 정치적·행정적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고려를 장악한 이성계 세력의 개혁 추진에 동참했는데,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 참여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고려를 유지한 채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정몽주는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 했던 이성계의 혁명 세력과 끝까지 함께할 수 없었다. 그는 이성계 세력을 공격하는 동시에, 자신은 재상(수문하시중)이 되어 인사·재정·교육·의례·복식 등 국정 개혁의 전반을 총괄하면서 공양왕 대의 혼란한 정치 사회 상황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다. 이후 ‘5죄 재심’ 등의 사건과 이성계의 낙마 등을 계기로 이성계를 비롯한 혁명 세력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지만, 정몽주는 이를 좌시할 수 없었던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고려 최후의 보루였던 그가 죽자 고려 또한 곧 무너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정몽주의 삶과 활약상을 통해 그를 ‘개혁’에는 앞장섰지만 ‘혁명’에는 반대했고, 정치적 수완과 행정 능력이 탁월했던 관료이자 나라와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그 길을 치열하게 고민했던 현실 정치인으로서 재해석한다. 무엇보다 그가 때로는 정도(正道)가 아닌 권도(權道)를 과감히 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인간 정몽주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정몽주는 개혁을 위해 창왕을 폐위하는 데 앞장서거나, 30년간 깊이 교유했던 동지였지만 정적이 되어버린 정도전을 공격하고자 그의 어머니의 천한 신분을 이용하는 등 필요에 따라 정도에 어긋나는 행동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전자에서는 개혁을 통한 국가와 민생의 안정, 후자에서는 혁명을 막고 고려를 지키는 것이 그가 추구했던 ‘대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권도를 택했다고 해서 정몽주의 업적이나 위대함이 폄훼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덧붙인다. 오히려 그런 면모는 고려 말 혼란기의 현실 정치인 정몽주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정몽주를 둘러싼 ‘충절의 화신’이라는 신화를 걷어내더라도, 그가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