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해양의 고리』의 원서 제목 ‘The Oceanic Circle’은 모한다스 간디가 사회질서를 바다에 돌을 던졌을 때 계속 옆으로 퍼져나가면서 생기는 원, 즉 고리에 비유한 데서 착안했다. 이러한 인간질서는 개인, 촌락, 국가, 지역, 그리고 마침내 글로벌 공동체까지 망라한다.
바로 이러한 구조가 이제는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 및 1992년 리우회의와 그 뒤를 이어 탄생한 각종 조약, 협약, 프로그램 등으로 만들어진 해양 거버넌스라는 환경에서도 부상하고 있다.
이 새로운 질서에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적, 윤리적 측면이 있다. 이 질서의 특징은 비계층성, 참여성, 다학제적이며, 정부는 물론 민간 부문까지 포괄한다. 이러한 구조의 질서는 어류 남획과 어족자원 고갈, 해양·대기·육지 기반 자원에서 발생하는 오염, 기후변화와 해수면 변동, 생물다양성 보존 등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해양 거버넌스는 우리가 인간들 서로와 자연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심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생명 그 자체처럼 이 새로운 질서도 인류공동유산으로 선포된 바다에서 탄생했고 이제 그 범위를 넓혀가며 ‘해양의 고리가 중심인 세계’의 생물권을 모두 아우르면서 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질서로 나아가고 있다.
『해양의 고리』 는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은 지구적 생명유지체계에서 해양이 맡은 역할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 중요성은 쉬이 간과되곤 하는데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이 장에서는 해양학의 딱딱하고 어려운 강의를 늘어놓는 대신 동물의 왕국인 원시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해양과학, 해양기술의 변천사를 살펴본다.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물리적 매개변수가 될 것이다. 이 장에서는 또한 바다와 생물권에 대한 위협을 종래보다 다소 폭넓은 관점에서 다룬다. “알면 알수록 우리가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더 깨닫게 된다.” 과학과 기술은 물론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대규모의 생태계 재앙으로 돌진하는 흐름을 막는 데는 불충분하다. 불확실성이 갖는 영향력을 자세하게 다룬다. 탄소, 물, 미네랄 등의 순환 시스템은 ‘해양의 고리가 중심인 세상’을 상징한다.
제2장에서는 해양공간의 문화적 측면을 통찰한다. 우리가 자연이나 해양을 다루는 방식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경우와 인간의 활동과 자연을 별개의 하위체제로 보는 경우 결론이 달라진다. 이 장에서는 주로 문학, 미술, 음악에서 표현된 인류의 역사적, 문화적 진화에서 해양이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개관한다. 이와 더불어 전쟁과 해양을 함께 엮어 살펴본다. 문화, 경제, 해군 발전의 관련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본다.
제3장은 해양을 경제적 관점에서 다루며 네 단락으로 나뉜다. 첫 번째 단락은 해양의 가치를 세 항목으로 나눠 설명한다. 첫 번째 항목은 해양 관련 재화와 서비스의 현재 ‘시장가치’로, 정확한 금액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치를 뜻한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추정한 것보다도 훨씬 크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전체 국제교역에서 해상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90%에 이르며, 크루즈선 운영 등 해양 관련 관광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최근 성장하고 있는 해저 광섬유케이블 역시 매우 큰 요소이다. 두 번째 항목에서는 21세기에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로운 해양 관련 산업의 시장가치를 다루고, 이어 세 번째 항목에서는 인간의 생명유지체계의 일부로서의 해양의 가치를 고찰한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해양의 가치 중 수량화하거나 금전화할 수 없는 부분의 압도적 중요성, 그리고 GNP나 GDP를 부와 복지의 척도로 사용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이 높은 점을 고려하여 해양의 진정한 부를 측정하는 적절한 지표를 탐색해 본다. 오늘날 사회 및 환경 지표에 관한 방대한 문헌이 있지만, 이들은 육상 경제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쉽게도 해양은 무시되었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대두되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의 경제학의 윤리적, 정신적 측면을 다룬다. 여기에서는 바다와 관련한 경제학을 다루지만 보다 일반적인 맥락에서도 적용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락에서는 앞선 논의를 바탕으로 기본적인 원칙과 실질적인 지침을 도출한다.
제4장에서는 ‘육지 관점’과 ‘바다 관점’을 대비시킨다. 바다는 육지와는 전혀 다른 환경으로, 우리에게 다른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우주에서 중력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통하지 않는 ‘육상’ 개념이 많다. 가령 로마법전 맥락에서 재산의 개념, ‘베스트팔렌 체제’에서의 주권 개념, ‘영토 경계선’ 개념 등은 바다에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물고기도 오염도 아무 제약 없이 경계를 넘나든다. 이 장에서는 ‘인류의 공동유산’ 개념에 초점을 맞춰 그 경제적, 환경적, 군축적 측면을 ‘지속 가능한 개발’과 ‘포괄적 안전보장’과의 관계를 검토한다. 우선 유엔해양법협약을 분석하되, 법적인 부분이나 과도기적인 부분은 가볍게 짚어보고 이 ‘바다의 헌법’이 지닌 진정한 혁신적인 개념과 원리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 원칙들은 ‘시스템의 변혁’이며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탄생한 프로세스 전체의 기초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유엔 시스템 재구축이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조망한다.
제5장에서는 최근 형성되고 있는 해양 거버넌스의 모습을 다룬다. 제4장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양 거버넌스와 해양 관리의 ‘규범적 비전’을 전개한다. 이때 해양 ‘경계’의 ‘투명성’, 즉 수평적(학문 분야, 담당 부서, 부처, 전문기관, 프로그램 등) 경계도, 수직적(지방, 국가, 지역, 세계라는 거버넌스 차원 간) 경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그리고 지속 가능한 개발, 공통적이고 포괄적인 안보, 형평, 공동유산, 참여라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삼는다. 이 장에서는 유엔환경개발회의 이후 탄생한 다양한 조약, 협정, 행동계획(기후, 생물다양성, 공해 어업, 소도서, 연안관리, 육상의 오염원)에 의해 확립된 수많은 제도를 해양과 관련 있는 부분에서 검토하고, 이 제도들을 서로가 중복되지 않고 서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제6장에서는, 우리의 ‘푸른 행성’을 전체적으로 전망한다. 20세기 초반 4분의 3기간 중에 일어난 수많은 극적 변화에 이끌려 만들어진 유엔해양법협약과 유엔환경개발회의의 프로세스는 그 자체로 변화의 강력한 동력이다. 이 마지막 장에서는 시야를 한층 넓히고자 한다. 바다는 완전히 새로운 국제·국내, 정치적, 법적, 사회적 질서 형성을 위한 장대한 실험의 장이 될 것이다. 30년에 걸친 해양 문제 연구에서 얻은 교훈을 검토하고, 이 교훈들이 새천년을 맞이하는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안보 불안, 빈곤, 불평등, 인간 및 자연의 황폐)에 대한 ‘종합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살펴본다. ‘해양의 고리가 중심인 세계’에 도달하는 것은 요원할 일일지 모르지만, 그곳을 향하는 여정 그 자체가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