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를 그리던 고대의 이야기꾼처럼,
저자는 책과 사람을 이어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쾌하고, 사려 깊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_금정연
독자들께 털어놓자면, 면접 때 나는 공연장에 불려 나온 물개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수습 직원 월급이 『오래된 골동품 상점』(1840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시대에 붙박인 것처럼 느낀 건 사실이지만, 나는 그보다 적은 월급에도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여정이 이처럼 간단히 시작되었다는 게 재미있기만 하다. 별 성의 없이 만든 광고 하나를 온라인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슬쩍 면접을 보고, 빠른 속도로 구두를 닦고 나니(그날 한 번뿐이었지만), 나는 희귀 서적 판매인이 되어 있었다.
_‘책머리에’ 중에서
몇 년 전, 백수였던 이십 대 청년이자 이 책의 저자 올리버 다크셔는 런던의 번화가와는 거리가 먼 새크빌스트리트에 위치한 쥐 죽은 듯 고요한 매장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소서런의 수습 직원 면접을 보기 위해서였는데 이것이 그의 끝없는 불운의 시작이었다. 그는 딱 일 년만 일하고서 먼지를 덜 뒤집어쓰면서 월급은 더 많이 주는 제대로 된 일자리로 옮겨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래된 책들의 매혹적인 냄새와 분위기,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 업무 중 낮잠 시간(저자는 기면증을 앓고 있어 다른 직장에서는 게으른 노동자라는 낙인이 찍혔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는 곧 책더미를 파헤쳐 초판본을 발굴하고, 3미터나 되는 장대를 들고 말 많은 방문객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종종 출몰하는(그렇다고 믿는) 유령(서점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사업에 미련이 남은 고 소서런 씨)을 화나지 않게 하는 요령을 익혀 나간다.
곧이어 이 수습 직원은 온갖 장르의 방문객(책을 사러 오거나, 팔러 오거나, 혹은 이와는 아무 관계 없는 목적으로 출몰하는)들을 상대하며 점차 레벨업을 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함께 일하는 직원들은 하나같이 ‘빈티지’라기보다 아날로그, 구식에 가까운 업무 방식을 21세기에도 유지하고 있다. 저자의 동료들은 인터넷을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등에 파리 한 마리가 내려앉은 정도’로만 여기며, 여전히 ‘모든 사람들은 깃털 펜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설립 250주년도 넘어선 서점의 곳곳은 기묘하지만 가끔은 멋진 고객들, 혼돈과 혼란 그 자체인 책장들, 라벨이라곤 없는 열쇠 뭉치, 무려 독이 든 책, 심지어 책도 아닌 온갖 골동품들로 포화 상태를 이룬다.
“헌책방에서 몇 시간씩 정신을 놓고 있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이 책의 재미있는 페이지들을 훑어보는 건 좋은 서점을 둘러보는 일만큼 만족스럽다.”
“신비롭고 기괴하고 경이로운 세상을 매혹적으로 압축했다. 모든 페이지가 즐겁다.”
이 책은 소서런이라는 역사적 장소를 바탕으로 ‘고서점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는 직업 에세이인 동시에 희귀 서적 거래가 이뤄지는 베일에 싸인 생태계를 탐구하는 입문서이기도 하다. 고서적, 희귀 서적, 그리고 골동품 거래 산업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내면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괴팍하고 정직하게 수십 년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도 함께 담아냈다. 등장인물 중 많은 이들이 고장 난 물건을 버리지 못하며, 인터넷과 컴퓨터 등 현대 문물과는 ‘냉전’ 상태로 지낸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본인 포함) 사회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아주 오래된 것, 좀 더 나아가면 ‘영원’ 같은 어떤 이상향을 마음속에 품은 이들이다.
소서런은 서점이라기보다는 박물관에 가까운 느낌이 들 정도로 고풍스러운 공간이다. 16~21세기에 이르는 수많은 서적들을 소장하고 있으며, 유명 작가의 수기 원고와 초판본 등은 물론이고 사인본도 존재한다. 이처럼 소서런은 문학적 기쁨으로 가득한 보물 창고지만, 자꾸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장소이기도 하다. 유별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는 건지 어디 가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특이 취향을 가진 고객들, 사람 가죽으로 제본한 책에 대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대는 고객들, 때로는 공격적인 태도로 불법적인 물건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공존한다. 이들과 맞서는 동안 저자는 희귀 서적 거래 시 사용하는 불가사의한 용어, 우스꽝스러울 만큼 시대에 뒤떨어진 관행, 가격 흥정의 암묵적인 규칙 등을 배워 나가며 어엿한 한 명의 책 판매인으로 거듭난다.
저자뿐만 아니라 이곳의 직원 모두는 고서적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중고책을 사들이고, 경매에 참석하고, 망가진 도서를 복원하고, 수많은 책장을 뒤져 고객 맞춤형 책을 건네고, 오래된 고객들과 손편지를 교환하는 일까지가 업무 영역에 포함된다. 각자 자신만의 선을 가지고 어떤 책을 누구에게 팔지를 선택하는 재량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이들 모두의 바람은 소중한 책이 온당한 장소에서 오래도록 읽히며 보존되는 것뿐이다. 무언가를 묘사하는 첫 문장이 ‘옛날 옛적에…’로 시작할 법한 무척이나 오래된 서적과 작품들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아날로그와 빈티지, 나아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예술 그 자체에게 건네는 저자의 사려 깊고 진심 어린 ‘리스펙’을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