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와 식민사를 통합하다
‘월경자’들은 정치사의 주체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책은 실은 이들이 이주지역이나 일본의 정치 질서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우선 국민국가 이데올로기가 주권국가 형성과 글로벌 자본주의 경제로의 편입과 맞물리면서 기층민들의 개체화를 낳아 ‘이민‧식민’의 형태로 세계시장을 향해 경계를 넘는 사람의 이동을 보편화하자, 메이지 유신 이후 주권국가 형성기 일본에서도 일본인의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제1부는 메이지 유신 직후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제2부는 20세기 전반, 제3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국민국가 규범이 체계화되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공간적으로는 일본 본국뿐만 아니라 제국 일본이 판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속령 통치의 대상이 되었던 홋카이도, 타이완, 남가라후토(남사할린), 조선과, 일본의 지배지역이 되었던 남양군도, 관동주, ‘만주국’, 나아가 일본인의 이민지였던 하와이나 남북미, 미국령 필리핀 등 아시아태평양지역 전반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국경을 넘어 이주하는 이민과, 일본의 지배지역으로 이주하는 식민을 함께 다룸으로써 지배지역에서의 식민주의적인 지배-종속 관계뿐만 아니라 민족 간 인구구성이나 본국과의 연계 등으로 형성된 민족 간 관계도 정치 질서에 영향을 미쳤음을 드러냈다.
이러한 인식은 예를 들어 19세기 후반 내지 잡거 논쟁에서 홋카이도 이주와 하와이 이주가 함께 논해졌던 담론공간이나, 이민과 식민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는 ‘만주국’ 이주의 복합성, 지배민족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인구상의 마이너리티로서의 불안으로 머저리티들과 교섭해야 했던 조선이나 타이완의 식민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이민사와 식민사로 분단되었던 종래의 ‘월경자’들의 역사를 통합하고 그것을 정치사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 있다.
민족과 국가
이를 통해 저자가 주장한 것은, 주권국가의 탄생과 영역 확장, 세계시장 편입으로 인한 노동력의 이동, 국민국가 단위의 국민통합 등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국적과는 다른 범주인, 중층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정치집단으로서의 ‘민족’이었다고 보았다. 즉 근대 국민국가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국민국가가 아니라, 지배 영역을 수시로 바꾸어 온 주권국가와 공간적 경계를 넘어 이동하고 변용하는 부정형의 민족집단으로서의 일본인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일본인’은 일본 국적 보유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근대 일본에서 일본 국적 보유자는 제국 일본의 신민을 말하는데, 신민은 다시 일본 호적 보유자와 일본 호적 비보유자로 나뉜다. 일본 호적 보유자는 야마토인, 홋카이도 아이누, 오키나와인, 가라후토 아이누 등이며, 일본 호적 비보유자는 조선인, 타이완인 등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일본 호적 보유자만을 ‘일본인’으로 한정하여 분석한다.
이 책은 일본 국적 보유자로서의 식민지 경험과 이산, 탈식민 과정에서의 전쟁, 그리고 분단을 겪으며 국경의 변화 속에 끊임없이 이동을 강요당했던 ‘조선인’을 주체로 하여 이동이 초래한 정치 질서의 변동을 고찰하는 정치사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이것은 월경하는 조선인을 주체로 하는 새로운 정치사를 그려내는 것임과 동시에 이 책이 간과한 일본으로의 이민 혹은 일본 국적 보유자들의 이민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정치 질서에 미친 영향을 상호보완적으로 그려내는 데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