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유물을 보존하는 문제는 일찍부터 UNESCO와 국제천문연맹(IAU)의 관심사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IAU의 1991년 Buenos Aires 총회 때 천문학사위원회(Commission 41, History of Astronomy) 소속 천문아카이브 분과위원회(C41 Working Group on Archives)가 결성되었다. 이때부터 역사적인 천문유물을 조사하는 사업이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계속되어왔다. 이 사업 중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탈리아 Palermo천문대의 Ileana Chinnici박사가 아카이브하고 있는 천문문헌(국제회의서류, 유명인의 서신, 서책, 기념사진 등) 분야이다.
세계적인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는 천문유물의 종류는 이 천문문헌을 비롯해서 아주 다양한데, 현재까지 활동 중에 있는 것은 천문문헌과 더불어 영국 U. of Leicester의 Clive Ruggler교수의 천문유적지 조사이다. 이 외에도 한국 연세대학교의 나일성이 주도하는 해시계 조사가 있다. 이에는 미국의 U. of Pennsylvania의 Robert Koch교수와 덴마크의 Juergen Hamel교수가 협동하고 있었는데, Juergen Hamel교수와는 소식이 끊겼고 Robert Koch교수는 5년 전에 작고했다. 그런데, 해시계에는 유럽식, 이슬람식, 동양식 등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모양 재질 기능 등을 고려하면 너무 복잡해서 계통적인 분류법의 제정이 선행되어야 체계적인 아카이브를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일에는 아직 새로운 동조자가 없어서 현재는 답보상태다.
천문유물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천문도天文圖(성도星圖)이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해온 천문도는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첫째는 아라비아와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고, 둘째는 중국에서 시작된 것이며, 셋째는 16세기 이후 유럽식과 중국식이 혼합된 것이다.
첫 번째 아라비아와 유럽의 천문도는 서력 기원전으로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자리 몇 개를 그린 아주 작은 성도만이 남아있을 뿐, 전체 하늘을 그린 성도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성도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망원경의 발명으로 경쟁적으로 화려하고 정밀하게 만들게 되었다. 이런 유럽식 성도는 유럽 각국의 도서관이나 박물관이 잘 수집하고 보존하고 있다.
두 번째인 중국식 천문도는 극동 3개국(중국, 한국, 일본)이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형식에 따라 만든 것이므로 같은 뿌리를 가지고 성장 발전해 왔다. 다만, 형태만은 3국 간에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2,000년의 긴 역사를 통해서 전체 하늘을 기록한 천문도는 유럽의 성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역사적 깊이가 탁월하다.
한편, 유럽식과 중국식이 혼합된 세 번째 천문도는 극동 3개국(중국, 한국, 일본)에서만 생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대단히 많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중국식 천문도보다 후에 만든 최신작들이기 때문에 그 모양새가 화려하고 별자리 모양이 상세하므로 역사적 유물로서의 가치가 높다.
둘째와 셋째에 속하는 천문도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천문도를 조사하여 〈목록〉을 만든 것으로는 일본의 이모도 스스무井本進가 조사한 「本朝星圖略考 上下」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것은 일본에 보존되어 있는 성도만을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그 수는 많지 않다. 이 외에 아카이브는 아니지만, 〈해설서〉로서 좋은 평을 받고 있는 6종의 단행본이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 천문도를 수집하고 분류, 정리하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업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이 책에 제시된 천문도들을 지금의 상태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문화유산으로서 후세에 남길 수 있는 복원작업이 절실하다. 천문도 중에는 이미 사라진 것도 있고, 남아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훼손이 너무 심해서 보전하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