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쓴 소상팔경도의 제작 양상과 화풍적 특징을 다룬 네 편의 글을 엮은 것으로 소상팔경도의 기원, 한국으로의 전래 과정, 조선시대에 그려진 소상팔경도의 화풍적 특징과 양식적 변천, 한국의 소상팔경도가 지닌 미술사적 가치와 의의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실린 「안견 전칭의 〈사시팔경도〉」는 계절의 변화를 반영한 산수화라는 측면에서 소상팔경도와도 관련이 깊은 사시팔경도의 화면 구성 및 화풍적 특징을 조명한 글이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의 호남성(湖南省)에 있는 동정호(洞庭湖) 근처에서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만나 만들어낸 여덟 가지의 아름다운 경치(景致)를 지칭한다. 이 여덟 가지 장면은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모종(煙寺晚鐘), 어촌석조(漁村夕照), 원포귀범(遠浦歸帆), 소상야우(瀟湘夜雨), 동정추월(洞庭秋月), 평사낙안(平沙落雁), 강천모설(江天暮雪)이다. 북송(北宋)시대의 문인인 송적(宋迪, 1015년경~1080년경)이 처음으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렸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남송이 멸망한 이후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소상팔경도에 대한 인기가 급격히 떨어졌다.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 그려진 소상팔경도는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반면 소상팔경도는 한국과 일본에서 유행했다. 조선시대에는 전 시기에 걸쳐 소상팔경도가 그려졌다. 특히 조선 초·중기인 15-16세기에 소상팔경도가 많이 그려졌다. 일본의 경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3~1573)에 소상팔경도가 다수 제작되었다.
「한국의 소상팔경도」는 소상팔경도가 언제 중국에서 한국으로 처음 전래되었으며 그 이후 어떻게 한국적 특징을 지닌 산수화로 변화, 발전되었으며 각 시대별로 나타난 화풍적 특징은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다룬 글이다. 중국의 소상팔경도가 언제 한국에 전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고려의 명종(明宗, 재위 1171~1197) 연간에 소상팔경도를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명종은 소상팔경을 주제로 문신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 이광필(李光弼)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따라서 12세기 후반 이전에 이미 소상팔경도는 고려에 전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회화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조선시대에는 다수의 소상팔경도가 제작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안견파화풍으로 소상팔경도가 그려졌다. 안견파는 조선 초기에 활동했던 산수화의 최고 대가였던 안견(安堅, 15세기 중반에 주로 활동)과 그의 화풍을 추종했던 화가들을 지칭한다. 15-16세기 전반에 제작된 소상팔경도는 모두 안견파화풍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여전히 소상팔경도 제작에 안견파화풍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안견파화풍과 함께 당시 명나라에서 새롭게 들어온 절파(浙派)화풍으로도 소상팔경도가 그렸다. 따라서 조선 중기에 제작된 소상팔경도를 통해 안견파화풍, 절파화풍의 공존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남종화풍(南宗畵風)이 유행하였다. 그 결과 소상팔경도는 주로 남종화풍으로 그려졌다. 조선 초기, 중기에는 도화서 화원들만이 소상팔경도를 그렸으며 문인화가들이 남긴 작품은 남은 것이 없다. 반면에 조선 후기에는 문인화들뿐 아니라 김득신(金得臣, 1754~1822), 이재관(李在寬, 1783~1837) 등 화원 및 직업화가들도 남종화풍으로 소상팔경도를 그렸다. 조선 말기에도 김수철(金秀哲, 19세기 중반에 주로 활동)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남종화풍으로 소상팔경도가 그려졌다. 한편 19세기에는 소상팔경도가 저변화, 대중화되면서 청화백자의 산수문양으로도 그려졌다. 아울러 소상팔경을 그린 민화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청화백자의 산수문양과 민화는 소상팔경도 각 장면의 도상(圖像)적 특징과 화면 구성이 간략화, 인습화, 도식화된 양상을 보여주었다. 민화 중 일부는 어느 장면을 그린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형식화되었다.
소상팔경도와 관련된 나머지 세 편의 글은 ‘소상팔경’을 주제로 한 그림이 어떻게 시대별로 각기 다른 양상을 보여주었는가를 다룬 사례(事例)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비해당 안평대군의 〈소상팔경도〉」는 1442년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어떤 화가에게 의뢰해 그린 〈비해당소상팔경도(匪懈堂瀟湘八景)〉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이 화가는 다름 아닌 안견이라고 주장한 글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소상팔경도」는 안견 전칭으로 전해져 온 〈소상팔경도〉의 화풍적 특징을 조명한 글이다. 조선 초기에는 안견파화풍이 크게 유행했으며 현존하는 15-16세기 전반에 제작된 소상팔경도는 모두 이 화풍으로 그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소상팔경도〉는 편파이단구도(偏頗二段構圖), 단선점준(短線點皴) 등 조선 초기 안견파화풍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편파구도는 화면의 한쪽에 경물(景物)이 집중적으로 배치된 구도를 말한다. 단선점준은 산과 언덕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 짧은 선과 점으로 이루어진 준법(皴法)을 지칭한다. 화면에 보이는 넓은 공간감, 편파구도, 단선점준은 안견파화풍의 주요 특징들이다.
「겸재 정선의 소상팔경도」는 정선이 남종화풍을 사용해 소상팔경도를 그리면서도 소상팔경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바꾸는 등 창의적 실험을 시도했음을 규명한 글이다. 소상팔경은 본래 정해진 순서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산시청람, 연사모종, 어촌석조, 원포귀범, 소상야우, 동정추월, 평사낙안, 강천모설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다른 장면들의 선후 관계가 바뀌는 경우는 있었지만 ‘동정추월’과 ‘평사낙안’이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정선은 ‘동정추월’과 ‘평사낙안’ 장면을 바꾸는 등 소상팔경도 제작에 있어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는 중국의 화보를 참조하여 새로운 표현과 도상을 창출하는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소상팔경도를 그렸다. 따라서 정선의 소상팔경도는 그의 창의적인 실험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