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변덕에 생사를 맡기는 사람들
“아주 작은 고무보트 속에 갓난아기가 있었다. … 얼굴은 보랏빛이었고 움직임이 없었다. … 그는 자신의 인생이 바뀌기 직전에 있다는 걸 직감하고는 혼란에 빠진 사람 같았다.”
2015년 초가을, 튀르키예 에게해와 인접한 관광도시 보드룸 해안에 익사한 세 살배기 아기가 떠내려왔다. 이름은 알란 쿠르디(본명 알란 셰누). 쿠르디의 가족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서 튀르키예로 밀입국했고, 그리스 코스 섬으로 향하던 중 고무보트가 침몰하면서 사망했다. 쿠르디의 비극은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고, 세계 난민 사태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쿠르디가 난민 비극의 아이콘으로서 국제 사회에 커다란 메시지를 전달했음에도 여전히 난민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매년 수천만의 난민이 발생한다. 난민은 분쟁만이 아니라 자연재해를 통해서도 발생한다. 튀르키예는 가장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는 국가 중 하나이며, 유럽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 내 시리아 난민은 수백만에 달할 정도로 많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있다. 난민들의 비극은 현재 튀르키예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거대한 흐름 속 인간의 삶을 그리는, 감수성 가득한 이야기
“아기는 아빠 돌고래가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인간들도 돌고래만큼이나 선하면 얼마나 좋을까.’”
쥴퓌 리바넬리는 튀르키예 대표 지식인으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목소리를 내고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써 왔다. 『어부와 아들』에서 그는 국제적 문제를 그만의 독특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일상에 끌어온다. 튀르키예의 작은 마을에 사는 가난한 부부에게 벌어지는 일은 작지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개인의 삶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지만 스스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값싸게 어부에게서 사들인 생선으로 만들어짐에도 결코 어부의 벌이로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관광객,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과 그들을 가로막는 사회, 이익을 위해 환경을 끔찍한 방법으로 파괴하는 기업들, 가족의 붕괴와 재결합 그리고 그를 위한 누군가의 희생. 이 모든 것들이 리바넬리의 글 안에서 삶과 이어져 있다. 소설 속에서 어떤 것도 기적적이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문장이 읽히는 순간에도 그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감수성 가득한 글로 풀어내는, 우리 시대의 현재이다.
리바넬리는 『어부와 아들』에서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중심에는 가족과 바다가 있다. 바다는 생명을 낳고, 생명을 앗는다. 바다에서 가족의 붕괴와 결합이 이루어진다. 가족과 바다의 관계를 잘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리바넬리가 전하는 이야기에 잘 공감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가족의 중요성일 수도, 삶의 터전을 소중히 하자는 것일 수도 있다. 『어부와 아들』는 각자에게 있어 ‘가족’과 ‘바다’가 무엇일지 떠올릴 기회가 될 것이다.
리바넬리가 전하는 인간미와 정(情)
“마을 노인들은 그리스인들이 본토로 강제 송환되기 전까지 그리스인 이웃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리바넬리의 시선은 비극과 분열이 아니라 인간미와 정(情)을 향한다.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20세기 초에 전쟁을 치렀으며, 체결된 조약에 따라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을 통해 튀르키예 영토 내 그리스 정교도와 그리스 영토 내 무슬림을 각각 추방하였다.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이 고향을 잃고 쫓겨났다. 하지만 리바넬리가 보는 과거는 그런 갈등이 아니라, 아이들이 종교와 문화에 구분 없이 어울려 놀고,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보고 배우는, 조금 더 인간다운 면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풀어내는 글에도, 이미 거의 잊어버려서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리스어로 통역했다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어부와 아들』은 갈등보다 인간미 있는 세상, 조금 더 숨통 트이는 세상을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