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가 아닌 훌쩍임과 함께.”
T. S. 엘리엇의 시처럼, 인류는 아주 조용히 시들어 가고 있다.
뉴욕 전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초고기능 로봇 스포포스는 매년 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에 오른다. 그가 그곳에 오르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죽음이다. 그러나 로봇인 그에게 죽음이라는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가 알았던 로봇들, 인간들이 하나둘 지구를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는 자신의 삶을 멈출 수 없다. 연례행사처럼 자살 시도를 끝내고 나면 그는 다시 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자신의 능력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스포포스의 주변에는 모두 그보다 ‘멍청한’ 인간과 로봇뿐이다.
그런데 그의 앞에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난다. 폴이라는 이 남자는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고대의 교육용 자료로 글 읽기를 배웠으며, 대학에서 읽기를 가르치고 싶다고 말한다. 스포포스는 폴이 자신의 금속 뇌에 아주 오랫동안 박혀 있던 그 수수께끼를 풀어 주리라 기대한다. 바로 오래전 로봇 개발에 활용되었던 실제 인간 뇌의 기억, 스포포스에게는 마치 잊어버린 전생 같은 진짜 인간의 기억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한 지성체 스포포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글을 읽으며 변해 가는 폴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 메리 루다. 두 인간의 접촉은 스포포스의 예측을 빗겨 나가는 결과를 낳는다.
스포포스는 결정을 내린다. 이제 그의 목적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40년 전에 그린 400년 후 미래
작가 월터 테비스는 그의 다른 작품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그랬듯, 이 작품에서도 SF의 문법으로 현대 사회의 이면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모킹버드」에서는 우리 시대에 드러나기 시작한 인구, 식량, 자원 등의 문제가 400년 후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보여 준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월터 테비스의 상상력이 더해진 미래 지구에서 인간은 물질적, 정서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세하고 흥미롭게 그려진다. 그리고 인물들은 각자의 에너지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작품 속에서 400년 후 미래의 인물들은 과거 인류가 쌓아 온 역사나 문명과 단절되어 있다. 그들은 ‘고대인’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로운 체제와 환경에서 성립된 독특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작품 속 인물들에 충분히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인류 공통의 난제인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익숙한 신화나 작품에서 빌려 온 비유와 상징들이 곳곳에 녹아 있어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미래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과거의 대중문화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 역시 독자를 한층 더 몰입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