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학 교수는 군사학의 학문체계 필요성을 인식하고, 학문의 이론화를 시도하였으며, 국방대학원 퇴직 이후 신라통일의 흔적과 원인을 연구하다가, 2003년도부터는 충남대학교에서 군사학과 개설에 참여하고 2018년까지 강의를 하면서 한국의 군사학 학문화에 기여하였다.
“국가의 독립과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비하라. 그리고 국민・국토・주권의 수호도 전쟁의 대비에서 비롯됨을 명심하라!”
‘풍석 이종학 교수 1주기’를 추모하는 학술 세미나가 2023년 12월 12일 공군사관학교에서 학교장과 교관, 사관생도, 제자 및 군사학 후학들의 참여하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럼에도 제자들과 후학들은 교수님의 국가와 군에 대한 헌신과 애정, 그리고 군사학에 대한 열정을 널리 알리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였고, 2023년 5월부터 추모집을 발간하자는 의견이 있었던 터라 교수님의 연구업적과 사상, 제자 사랑의 높은 뜻을 기리는 추모논문집을 발간하기로 뜻을 모았다.
많은 분이 참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교수님의 마지막 연구가 된 「백선엽 대장 논평」이 탈고되지 않은 유고 논문이지만, 논문 자체가 교수님의 군사학에 대한 연구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산물이라 생각하여 수록하였다. 그리하여 제1부는 백선엽 장군에 대한 논평인 유고 논문을, 제2부는 후학들과 제자들의 추모 논문으로 구성되었다.
이종학 교수님의 저서와 논문, 주요 활동, 행적들을 살펴보면서, 어린시절부터 참 특이한 분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창시절에 일본어로 된 「퀴리부인전」과 안동혁의 「과학신화」를 읽고 훌륭한 화학자가 되는 꿈을 꾸었고, 그 후 친구 권유로 울릉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포항으로 돌아와 1951년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군인의 길을 걷게 되셨다.
1967년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군사학과장(중령) 재직 시, 인문학과 학점은 30학점이 넘는 데 비해 군사학과는 16학점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직업군인을 양성하는 사관학교에서 ‘적과 싸워 어떻게 승리하느냐’는 과제를 연구하는 군사학과 과목편성(학점)의 증가를 주장하셨다. 1968년 공군사관학교 군사학과장(중령)으로서 국방대학원 안보과정에 「전략론」 강의를 갔다가 1층 대강당 입구에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백번 싸워 백번 승리하는 것은 육군대학 수준에서 연구할 과제이고, 국방대학원에서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전략적 수준의 과제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결국 그 현판을 내리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풍석 이종학 교수님은 50대 초반에 인생 후반기인 60대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자’는 목표를 설정하고, 65세가 정년인 국방대학교 교수직 사임을 결심하시고 58세(1987)에 명예퇴직 후 경주 평동에 「서라벌군사연구소」를 설립하여 신라 화랑・군사사軍事史 연구와 현장 답사에 전력을 경주하셨다. 사실 이런 일련의 결정은 손쉽게 내릴 수 있는 결단이 아니기에 교수님의 혜안이 오히려 더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은 도전적이고 확신에 찬 학문적 용기로 평생을 군사학 발전에 헌신 노력하셨다. 그간의 연구활동을 보면 모두 무심히 넘길 수 없는 과제들이었으며, 일반 역사학자들이 바라볼 수 없는 날카롭고 예리한 군사사학적軍事史學的 시각으로 역사학의 빈 공간을 메우고 그 영역을 확장시켰다. 대표적인 연구 주제와 성과로는 삼국통일의 주역인 태종무열왕, 문무대왕과 김유신, 화랑도에 대한 연구, 원광법사와 원효대사 연구, 백제 주류성의 위치 비정 등 백제사 연구, 이순신 연구, 6・25전쟁 관련 연구, 그리고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손무의 「손자병법孫子兵法」, 웨드마이어 회고록, 북한 핵문제, 한반도의 안보문제 등이었다. 특히 2001년 1월과 2002년 1월에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연구원과 일본 자위대 장교들에게 특강을 했으며, 2005년 12월 1일, 「한 군사학도의 연구궤적」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전사부에서 장장 3시간 동안의 발표를 통해 광개토왕대왕 신묘년 기사의 해석, 일본서기 사료비판, 고대 일본의 항해술, 임나일본부설의 허위, 일본 가와우치 왕조 및 천황가의 출신이 한반도의 김해에서 유래했음을 당당히 주장하기도 했다. 또 미 전쟁대학원(WAR COLLEGE)을 방문하여 군사전략 자료를 획득해서 군사전략을 어떻게 실체적으로 수립해 가는가에 대한 절차를 체계화하여 교육함으로써 한국 군사전략발전에 공헌하였다.
얼마 전 교수님의 서재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큰 창문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사용하시던 필기구인 만년필이 놓여있고, 마지막까지 연구하시던 백선엽 장군 관련 서적들이 펼쳐져 있었다. 사방은 귀한 책과 논문, 군사학 관련 서적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책 냄새가 나고, 만년필 잉크 냄새가 나고 어둠을 밝히던 탐구의 냄새가 났다. 신라, 가야, 백제, 고구려, 일본 그리고 고려, 조선, 대한민국, 미국, 독일, 중국 그리고 6・25전쟁과 세계전쟁을 넘나들던 시공을 초월한 ‘군사학 서재’ 그대로였다.
교수님께서 남기신 연구 산물은 교수님의 군사학이나 다른 학문연구에 대한 열정을 널리 알
리고 이해를 증진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하며, 나아가 이 추모논문집이 디딤돌이 되어 그동안 교수님이 개척하고 발전시켜 온 군사학의 영역을 더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수님이 당신의 묘비명에 쓰라고 주신 ‘평생 군사학을 연구하고 내린 결론’이 가슴을 울린다.
국가의 독립과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이해하고 거기에 대비하라.
그리고 국민・국토・주권의 수호도 전쟁이 대비에서 비롯됨을 명심하라.
풍석 이종학 교수 추모 사제동행 논문집」을 발간하는데 협조해 주신 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장 박수연 교수와 양광준 과장, 김보라・김민지씨 등 직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교수님 곁에서 자료를 입력하시고 교정하면서 편집을 도맡아 하신 사모님 최정화 여사와 추모논문집 발간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