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은 생명 본성의 기록이다
다윈 이후 15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생물학자들은 굉장한 화석들을 발견해왔다. 거대한 공룡부터 마이크로 크기의 미소생물 화석까지 발견했고, 수많은 현생동물종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과도기 화석도 차고 넘치게 발견했다. 다윈이 오직 꿈만 꿀 수 있었던 수많은 증거가 수없이 쌓인 것이다. 현재 화석 기록은 어마어마하게 다양하며, 따라서 생물 진화의 과정을 대단히 정밀하게 완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발굴된 화석 기록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풍부하다. 이런 화석 기록은 자연선택이 느리고 꾸준하게 작용함을 입증해주며, 진화를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증거다.
생명은 진화했고, 진화는 관찰로 얻은 자연의 사실이다. 이 간단한 한마디를 증명하기 위하여 이 책은 35억 년 생명의 역사가 남긴 흔적, 즉 온갖 화석 기록을 살핀다. 이 책에서 저명한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도널드 프로세로는 진화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인 화석 기록에서 점들을 이루고 있는 과도기 꼴들과 화석 계열들을 가지고 정밀하고도 흥미로운 역사를 엮어냈다.
풍부한 화석 사례와 그림을 실은 이 책은 화석 연대표를 완성할 수많은 ‘빠진 고리들’을 제시하고, 진화의 메커니즘을 둘러싼 논쟁을 세세하게 살핀다. 또한 화석 연표를 완성시켜줄 ‘빠진 고리들’이 최근에 발견된 이야기와, 진화를 끌고 가는 메커니즘이 무엇이냐를 놓고 오늘날에 과학자들이 벌이는 논쟁도 자세히 소개한다.
창조론자가 화석 증거를 거부하는 방법
화석 기록이 차곡차곡 쌓이고, 진화의 과정이 세세히 밝혀지고 있음에도 창조론자들은 여전히 진화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화와 교리에 과학적 사실을 어떻게든 끼워맞추기 위해 왜곡과 기만을 일삼는다. 그들은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홍수지질학’이라는 기괴한 지구론을 설파하고, 우주의 나이가 6000살이라 하는가 하면, 지적인 설계자가 우주를 창조했다는 지적설계론을 펼친다.
창조론자들의 강연회에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화석 발견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그들은 케케묵은 논쟁을 꺼내들며 논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뢰할 수 없다는 증거라 주장한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배울 의지도 능력도 없으며, 과학 논문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맥락을 무시한 채 인용하는 ‘인용물 채굴’을 일삼는다. 창조론자들이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지금까지 발굴된 화석 기록은 진화에 의해 지금의 생명꼴들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지질학 증거 역시 기독교의 창조 신화나 홍수를 전혀 뒷받침하지 않는다.
창조론자들이 쓰는 또 다른 수법은 수없이 쌓여가는 화석 기록에도 불구하고 늘 증거가 부족하다며 ‘빠진 고리’를 내놓아보라고 도발하는 것이다. 마치 과녁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제논의 화살처럼 매번 중간 단계의 ‘빠진 고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과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거의 모든 중간단계의 화석을 발굴해냈다. 이 책은 수많은 과도기 꼴들의 화석 기록을 제시함으로써 빠진 고리라고 부를 만한 (비록 잘못된 관념이긴 해도) 화석들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깃털 달린 티라노사우루스?
창조론자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시조새를 “100퍼센트 새”라고 여긴다. 날개와 깃털이 있고 하늘을 날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해부학적 구조상 시조새는 단지 깃털이 있고 날 수 있던 공룡이다. 당연히 시조새는 현생 조류의 조상이다. 물론 직계 조상이 아니라 그 조상 중 어느 하나의 사촌이다.
시조새란 기본적으로 깃털 달린 공룡이다. 공룡은 사실 지금도 볼 수 있다. 바로 새의 꼴을 하고 있다. ‘새는 공룡’ 가설은 이미 고생물학자 99%가 동의한다. 수각류 공룡과 현생 조류를 잇는 과도기 화석이 놀랄 만큼 많이 있어 수각류와 고등한 조류 사이의 빈틈 대부분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육식공룡의 주요 갈래인 수각류 공룡(이족보행을 하는 용반목 공룡)은 해부학적 구조와 습성이 현생 조류와 상당히 유사하다. ‘알도둑’이라는 뜻의 오비랍토르는 몽골에서 처음 발굴될 당시 트리케라톱스의 알을 훔치는 줄 알았는데, 확인 결과 알을 낳은 어미였다. 새와 같은 모습으로 알을 품은 채 매장된 오비랍토르 골격도 발견된 바 있다. 특히 중국 랴오닝성의 백악기 하부 화석층에서 발견된 깃털 달린 공룡 메일롱Meilong 화석은 몸의 윤곽, 깃털, 털뿐 아니라 뼈 하나 빠진 곳 없이 완전하게 이어져 ‘새는 공룡’ 가설을 거의 완벽하게 뒷받침한다.
수각류 공룡의 깃털은 원래 체온을 보전하는 용도였다가 비행을 위한 구조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단순한 핀 모양 깃대부터 솜털 깃을 거쳐 깃가지와 깃대가 비대칭을 이루는 복잡한 날개깃까지 깃털의 형태는 다양하다. 수각류 공룡의 특징을 감안할 때 고생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를 포함해 대부분의 육식공룡도 깃털을 가졌을 것이라고 한다.
고래가 물속으로 들어간 까닭은
대부분의 화석 코뿔소들에게 뿔이 없었고, 대부분의 화석 낙타들에게 혹이 없었고, 대부분의 화석 기린들의 목이 짧았다. 진화 과정에서 지금의 꼴로 변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래에게는 원래 다리가 달려 있었다. 발굽포유류와 친척으로 육식성 발굽포유류 군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발굽포유류라고 하면 대부분 소를 떠올리지만, 고래는 사실 하마와 더 가깝다.
고래와 돌고래가 포유류임이 밝혀진 뒤 숙제는 고래가 과연 어느 포유류에서 녀석들이 기원했을까에 맞춰졌다. 1990년대 후반 분자생물학 연구를 통해 현생 포유류 가운데에서 소목 동물들(특히 하마)이 고래의 가장 가까운 친척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2001년 발목 부위가 보존된 초창기의 고래 표본들이 발견되었다.
고래에게는 물론 다리가 있다. 다만 볼기뼈와 넓적다리뼈의 잔재가 하반신의 척주를 따라 근육 속에 묻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집트의 에오세 중부와 상부 퇴적층에서 새로 발굴된 고대고래아목 동물인 바실로사우루스 표본에서는 쪼그마한 뒷다리가 밖에 달려 있었다. 24미터나 되는 기다란 몸뚱이에 뒷다리는 고작 사람 팔만 한 길이였다. 그 뒤로도 많은 발견이 더 이어졌다. 이제 과학자들은 고래가 소목 내부의 하마-돼지 계통으로부터 진화한 군이라는 생각에 대부분 동의한다. 육상 포유동물에서 고래로 진화한 이 놀라운 과정은 진화적 과도 과정이 화석 기록에 나타난 훌륭한 사례이다.
이미 과도기 화석은 차고 넘친다
창조론자들은 모든 생명 ‘종류’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기에 과학자들이 진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그럴 리가 없다며 중간 단계의 과도기 꼴을 내놓으라고 한다. 물론 창조론자들이 요구하는 ‘빠진 고리’에 해당하는 다양한 과도기 화석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먼저 ‘이빨이 있고 딱지가 절반뿐인 거북’인 오돈토켈리스 세미테스타케아를 보자. 중국의 트라이아스기 퇴적층에서 여러 점 발굴된 이 녀석은 배에는 완전히 발달된 딱지가 있지만 등에는 넓게 벌어진 갈비뼈뿐이다. 그리고 알려진 거북류 중 마지막으로 이빨이 있다. 개구리와 도롱뇽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개구롱뇽frogamander’이라는 별명을 얻은 게로바트라쿠스 호토니도 있다. 도롱뇽형의 몸체와 긴 꼬리가 있지만, 개구리처럼 머리는 짧고 주둥이가 둥글다. 이외에도 몇 가지 증거들로 이 녀석이야말로 개구리와 도롱뇽의 중간 화석임을 알 수 있다. 뱀이 땅 위를 걷던 어느 도마뱀 군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는 다리 달린 뱀인 나자시 리오네그리나(아르헨티나의 백악기 중기 지층)도 있다. 현생 뱀과 같은 몸체에 뒷다리가 달려 있으며, 완전하기 기능하는 볼기뼈도 있다.
이 책에는 앞에서 소개한 생명들 외에 토끼보다 조금 큰 크기에 두 발로 뛰어다닌 악어인 그라킬리수쿠스,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동물이자 육상동물과 고래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 암불로케투스 나탄스 등 다양한 과도기 동물의 화석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매너티, 물범이 육상의 포유류에서 발생해 나온 과정을 기록한 화석들, 코끼리, 말, 코뿔소의 기원을 알려줄 화석들을 포함해 인류가 큰 뇌를 가지기 오래전부터 곧선자세로 걸었음을 보여주는 화석 인류도 놀랍도록 다양하게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