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시인 오쿠자바의 시들을 엮은 책이다. 역자인 조주관은 러시아 시를 전공한 학자로, 기존에 출간했던 오쿠자바 작품집의 원고를 바탕으로 수정·보완해서 우리 독자들에게 오쿠자바 시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책에 실린 20개의 악보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해당 노래시의 전체를 담은 악보를 실어 독자들로 하여금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오쿠자바의 작품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책에 실린 시인의 다양한 사진들 또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오쿠자바 시인은 소비에트 러시아 시절부터 활동했지만, 사회주의 이념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념을 기치로 내걸고 작품 활동을 하기보다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불의, 폭력, 전쟁, 위선 등 세계의 어두운 면을 비판했고, 삶의 아름다움을 노랬다. 그렇기 때문에 현학적인 작품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즐기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이 민요풍의 율격을 보이는 이유다. 그의 시들은 노래를 붙이기 쉽도록 반복적인 후렴구와 쉬운 시어들로 되었지만, 내용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우리 시대엔 이미 그런 습관이 있다 / 밀물을 위해 썰물이 있고 / 현자를 위해 바보가 있고 / 모든 것이 평범하고, 모든 것이 공평하다.” -<바보들의 노래> 중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반복적인 구조 속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세계의 모순을 꼬집는다.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면서도 가슴속에 울림을 남겨 독자들이 머릿속에서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대중 앞에서의 공연을 즐겨했던 것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독자들이 소외되는 법이 없다. 그러한 애정이 아르바트 거리와 여인, 그리고 세계에 대해 뜨거운 사랑과 존경으로 표현된다.
“네 위를 걸어가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 / 그들의 구두 굽이 매일 너를 두드린다. /아, 아르바트 거리, 나의 아르바트 거리여, / 너는 나의 종교요, / 너의 길은 내 발아래 누워 있다.” -<아르바트 거리의 노래> 중
그는 노래시들은 시집뿐만 아니라 음반으로도 제작되어 전 세계의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무거운 삶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그의 따스한 목소리 덕분일 것이다. 이 책이 오쿠자바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