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완벽했고 자유로웠다.
끓어오르는 분노 또한 늘 거기에 있었다.”
헤로인, 방치, 학대, 노숙, 위탁 가정, 소년원, …
예기치 않은 인생에서 마주한 상실과 위로의 이야기
삶은 완벽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계획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원하는 방향대로 갈 수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돌아보면 계획과 방향은 어긋나고 삶은 뜻대로 흐르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분노 또한 늘 거기에 있었다. 친근하다가도 날카롭게 벼린 칼날을 들이대기도 하는 게 삶이다.
이 책은 방치와 학대, 헤로인 중독 등 온갖 폭력적이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했던 한 흑인 소년의 성장기이다. 저자는 헤로인에 중독된 부모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 위탁 가정의 학대, 범죄에 노출된 삶, 그리고 궁극적으로 불교를 포용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때로는 가슴 아프고, 들뜨고, 무섭고, 고통스럽고, 재미있고, 고양되는 삶의 장면들을 우리에게 전한다.
소설 같은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눈을 뗄 수 없다. 『톰 소여의 모험』처럼 개구쟁이의 자유분방함과 모험심을,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동심을 지키려는 신념이 저자의 소년 시절에서 흥미롭게 펼쳐진다. 온갖 사건들로 비극의 문턱을 넘을 뻔하면서도 넘지 않는 대목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그땐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한 인간의 성장기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면 먹먹해진다. 헤로인에 중독된 엄마를 향한 사랑, 가족들의 보살핌이 부재한 순간에 마주한 상실감으로 드러나는 폭력성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몇몇 어긋난 선택으로 끌어내려진 삶은 뜻밖의 장소에서 예기지 않은 인연으로 구원받는다.
“무엇이 삶을 구원하는가?”
일상이 폭력, 사방은 벽, 창도 하나뿐인 곳에서
볼펜 심지로 눌러 꾹꾹 쓴 인생의 두 번째 챕터!
캘리포니아주, 아니 미국 전역에서 폭력적인 역사로 가장 악명 높은 감옥 샌 퀜틴에서는 새로 들어온 수용자를 ‘물고기’라고 부른다. 저자는 ‘물고기’였다. 1981년 무장 강도 혐의로 샌 퀜틴에 수용된 그는 4년 뒤 교도관 살인 공모 혐의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23세 때 일이다. 사형수로 복역한 1990년부터 볼펜 심지와 책 몇 권, 일주일에 단 몇 시간만 운동할 수 있는 감방에 갇히기도 했다. 하나의 숫자로만 인식되고 난폭한 별명이 주어지는 복잡한 시스템인 그곳에서 폭력은 문화이자 화폐였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궁금했다. 고통과 아픔도 다뤄야만 했다. 그의 사건을 담당한 민간 조사관이 명상하는 법을 알려줬고, 명상으로 고통과 마주하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사형을 선고받고 얼마 후 불교 잡지에서 ‘죽음과 관련된 삶’이라는 글을 읽고 영적인 스승 차그두드 툴쿠 린포체를 만났고, 폭력으로 얼룩졌던 그의 인생은 두 번째 챕터를 연다.
“나는 불교의 가르침에 담긴 진리를 실험해 볼 시간이 많았다. 영적인 수행을 통해 모든 것이 오늘 여기에 있고 내일 사라진다는 무상(無常, impermanence)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고 있고 아무리 오해받고 있다고 느끼더라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은 항상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힘이 있다.”(본문 중에서)
불교 신자로서의 삶을 서원한 그에게 감옥에서 늘 반복되는 폭력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서원을 지금도 지키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교도관 살인 사건 당시 그는 감옥에 갇힌 상태였음이 밝혀졌고, 그를 유죄로 만든 증언은 뒤집혔다. 그가 사형 판결을 받은 지 3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사형수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의 무죄를 믿고 그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뿔싸! 한 편의 소설 같은 이 성장 드라마는 그리웠던 어린 시절이 아니다. 어른들이 방치한 모든 아이들의 가슴 아픈 성장 일기다. 일상이 폭력이며 사방은 벽이고 창문도 하나뿐인 좁은 감옥에서 볼펜 심지로 눌러 쓴 이 회고록은 상실과 위로 그리고 불교에서 찾은 삶의 방향을 고백한다. 또 폭력에 방치된 아이들의 상실감과 그 상실감을 채우는 어른들의 관심과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어쩌면 우리의 성장기였을지도 모를 이 이야기는 이제 어른이 된 우리에게 무엇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