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중국학 연구는 우리의 그것보다 연원도 오래되었으며 수준 또한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두 나라의 역사적 경험이 다른 데서 기인한 것인데, 우리의 경우 식민시대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치르느라 무슨 제대로 된 학문을 할 만한 여건이 애당초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에 반해 일본의 경우는 메이지유신 이래로 서양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후발 제국주의 국가로서 식민지 개척과 대륙 침략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중국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중국문학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비록 식민시대에 경성제국대학에 중국문학과가 있기는 했으나, 제국대학 자체가 식민지 백성들을 위한 것은 아니었기에 거기에 입학해서 중국문학을 연구한 이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사정은 별로 나을 게 없었고, 앞서 말한 대로 한국전쟁을 치르느라 대학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열악한 경제 상황 하에 학문 연구는 오랜 기간 침체기를 겪어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중국문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이후 여러 대학에 중어중문학과가 개설되어 신진 연구자들이 배출되는 한편으로 타이완에 유학을 다녀온 세대가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창설되었던 여러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로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우리나라 중국 어문학 연구는 수많은 신진 연구자들에 의해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되었다.
연구자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고 연구 성과 또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적, 질적인 수준에서 괄목한 만한 결과물들이 연이어 나왔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우리나라 중국 어문학 연구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왔다. 연구자 숫자만 해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고, 그들이 이루어낸 수많은 연구 논문과 저역서는 한우충동일 정도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중국 어문학 연구는 어두운 측면도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초기에는 대학에 자리를 잡기가 쉬웠지만, 그 수요가 어느 정도 채워진 뒤에는 뒤늦게 막차를 탄 연구자들이 대학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국연구재단의 연구 프로젝트 수행 등으로 호구도 제대로 못 이어가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로 인해 학문 후속세대가 단절되는 일까지 벌어졌고,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때 아닌 혐중 풍조까지 팽배해 향후 우리나라의 중국 어문학 연구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울러 양적으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중국 어문학 연구는 중국 일변도라 서구나 일본 등의 연구 성과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지하다는 약점도 갖고 있다. 머나먼 이역 땅인 미국이나 유럽은 차치하고라도 가까운 이웃인 일본의 중국 어문학 연구조차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옮긴이는 이런 문제의식을 오래 전부터 인식해 왔지만, 다른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연구 성과를 따라가기에도 바쁜 터라 다른 데로 눈길을 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0년에 안식년을 교토대학에서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일본어 기초가 잡힌 뒤에는 작은 책자 하나를 선택해 번역을 시도했다. 당시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일본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악전고투 끝에 번역을 끝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낸 책이 이하라 히로시(伊原 弘)의 『중국 중세도시기행』(학고방, 2012.)이었다. 그 뒤로도 일본어 공부는 꾸준히 해나갔다. 하지만 영어에 이어 중국어까지 두 개의 외국어도 버거운 판에 세 번째 외국어까지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가며 기억력마저 감퇴해 단어 외우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찾은 단어를 또 찾고 다시 찾는 일이 거듭되었다.
그러던 중 과학기술의 발달이 나의 번역 작업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OCR 프로그램과 구글을 비롯한 번역 프로그램의 활용이었다. 일단 일본어 책을 페이지마다 스캔을 해 OCR 프로그램에서 텍스트를 추출한 뒤 번역기에 돌리면 번역문이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조잡한 수준에 머물러 있기에 다시 윤문을 해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면 시간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고 과정을 줄여주어 훨씬 능률적으로 번역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초기의 OCR 프로그램이 허접한 인식률을 보이다가 최근에는 거의 97% 이상의 인식률을 보이듯 번역기 역시도 나중에는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끈한 번역 결과물을 내놓을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아니 그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확신한다. 물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대학에서 외국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기에 각 대학의 외국어 전공 학과가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그 이후로 나의 일본어 번역 작업은 속도가 붙어 다음과 같은 성과물을 내게 되었다.
마스다 와타루, 『루쉰의 인상』, 청아출판사, 2022.
시오노야 온, 『중국문학개론』, 학고방, 2023.
시오노야 온, 『중국소설개론』, 학고방, 2023.
그리고 바로 이 책 우치다 미치오 편, 『중국소설의 세계』까지.
여기까지가 나의 일본어 번역 작업에 대한 일종의 소개라면 이하는 『중국 소설의 세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이 책은 일본의 명문대학 가운데 하나인 센다이의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출신 연구자들의 글을 모아낸 것이다. 책의 말미에 이 작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책임자라 할 우치다 미치오 교수의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중국 고대소설을 시대 순으로 개관하고 있다.
여러 명의 공동 작업이라 서술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내용 역시 중복되는 곳도 더러 있다. 그럼에도 관점의 신선함과 충실한 내용 소개 등은 이 책이 가지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저작으로는 중국소설연구회[현재의 한국중국소설학회] 편, 『중국소설사의 이해』(학고방, 1994년)가 있다. 이 책은 국내에서 한창 중국 어문학 연구의 붐이 일었던 1990년대 초반 당시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이루어낸 성과다. 이 책 역시 중국 고대소설을 시대 순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그 주요 틀거리는 루쉰의 『중국소설사략』의 분류에 의거했다. 또 한 가지는 중국 학자의 책을 번역한 『중국고전소설사의 이해』(張國風 지음, 이등연․정영호 편역,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1년)가 있다. 이 세 권의 개론서는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무쪼록 이 번역서가 독자들의 중국 고대소설에 대한 이해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제현들의 가차 없는 질정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