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흐름을 예측하여 투자 분야 베스트셀러 책을 출간한 바 있는 저자가 인문 투자자의 내공을 가지고 예술철학 이야기를 풀어헤쳐 간다는 점도 이 책의 특이점이다.
1. 우리 시대 예술가들은 왜 예술을 하는가?
있는 그대로, 그냥 그대로 사는 게 싶지 않은 세상이다. 이러한 세상을 반영하듯 오늘날 현대미술은 있는 그대로를 그리기보다는 내가 느끼는 대로 그리는 그림들이 넘쳐난다. 누구나 한 번쯤 전시회장에서 ‘이게 무슨 그림이야?’라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났을까? 저자는 오늘날 현대예술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론이라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단어를 핵심으로 등장시킨다.
현대예술이 나오기 전까지의 예술은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의 본질인 존재 Being과 표상 Representation을 충실하게 표상하는 것이었다. 본질적인 존재인 Being은 신이 창조하는 것이고, 인간인 예술가의 역할은 이를 현실에서 충실하게 표상하는 것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근대 이전의 예술에서는 우리가 흔히 예술혼이라고 부르는 예술가의 독창성이나 창의력은 필요없었다. 이렇듯 과거에는 왜 전통적인 예술관을 지향하는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지배했고, 어쩌다가 현대의 사상은 다원론을 지향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오늘날에 왜 관객이 느끼는 아름다움이나 즐거움과는 상관없이 그저 예술가가 느끼고 원하는 대로 만든 것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2. 철학, 예술을 가스라이팅하다
문제는 중세 천 년에 걸쳐 기독교가 지배하면서 정치와 사상, 예술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차지한 교황과 교회 권력은 살아남기 위해 철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는데, 이는 교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중세의 교부철학자들은 잊혀져 가던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다시 불러들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양철학을 신학의 시녀라고 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철학은 철저히 교회의 권력에 복종하는 시녀 노릇을 하였으며, 예술을 가스라이팅하면서 도구로 사용한 결과 중세의 많은 종교화를 비롯한 예술 작품들은 철저히 기독교적 사상을 담아냈다.
르네상스 시기에 와서 교회 권력이 쇠퇴하게 되고 인문주의가 부활하면서 그리스 로마로 회귀했다가 절대왕정의 취향에 맞는 웅장한 바로크 양식으로 변화했지만, 이는 신권 대신 왕권에 복종하는 결과였을 뿐 예술은 자신만의 사조를 만들지 못했다.
3.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에 기반한 존재론을 찢고 나온 인식론적 고흐의 탄생
그런데 17세기에 여전히 지배적이었던 존재론에 토를 달고 나타난 철학자가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던진 철학자 데카르트였다. ‘그냥 존재하는 것’(존재론)이 아니라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인식론)는 명제는 근대 시민사회에 영향을 미쳤고, 당연히 예술에도 영향을 미치는 터닝 포인트였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에 기반한 존재론을 찢고 나온 인식론적 고흐의 탄생인 셈이다. 이제 예술가들은 자신의 느낌대로 사물을 표현하고, 오늘날 이해할 수 없는 정도의 현대예술을 탄생시키기까지 하면서 사상과 철학을 표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예술은 철학과 예술의 폭주 시대에 갈 길을 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