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세계를, 세계에서 마을을 찾은 삶
이 책에서 미즈는 사상의 형성을 개인사와 더불어 밝히는데 이 과정은 대공황, 나치 시대, 제2차 세계대전, 1968년 독일 학생 운동, 국제 여성 운동,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이에 대한 국제 저항 운동이라는 거시사와 이어진다. 자급자족하는 독일 농촌 마을의 대가족에서 태어나 자라며 부모와 이웃들에게 가족애·공동체 의식을, 전후 인문주의 고등학교에서 의욕 있는 교사들에게 자유로운 토론과 국제 친선의 이상을 배운 소녀는 자급 사회를 주창하는 에코페미니스트가 되어,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위해 힘없는 세계인의 실존을 파괴하는 일에 항거하는 데 평생을 바친다. 자급 공동체에서 자란 경험은 학자로서 사회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토양이 되었고, 학창 시절과 국제 교류의 경험은 인간이 가능성을 꽃피우는 데 폭넓은 교육과 만남의 기회, 미즈의 표현을 빌리면 ‘행복한 우연’이 필요함을 환기한다.
미즈는 마을에서 동경하던 넓은 세계로 나아간 과거를 돌아보고 마을과 세계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느낀 힘겨운 긴장이 삶의 원동력이었다는 깨달음, 마을이 있기에 세계가 있고 세계가 있기에 마을이 있다는 정반합의 인식에 도달한다. ‘세계를 생각하며 지역에서 행동하라(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유명한 표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 책을 쓸 때 77세이던 완숙한 학자 겸 활동가가 체득한 삶의 지혜, 옳다고 믿는 바를 추진하는 불굴의 의지, 실패와 후회를 털어놓는 진솔함에서 감동과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세계자본주의에서 인간과 자연을 목적이 아닌 이윤의 수단으로 격하한다는 비판은 지금 돌아볼 만하다. 에코페미니즘의 배경을 이해하는 동시에 다음 시대에 우리가 추구할 ‘좋은 삶’을 상상하고 논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계명대학교 여성학연구소 ‘전환의 시대와 젠더’ 번역총서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 기획을 통해 사회·경제 구조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현시대를 젠더의 렌즈로 들여다보고,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고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