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기력’ 현상에서 ‘학습된 낙관성’ 개념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는 성공을 중시하고 칭찬을 강조하는 교육 풍토가 주도해 왔다. 실패는 개인을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것이라 믿으며 성공 경험을 강조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삶 속에는 성공과 실패가 항상 공존해 있다. 더구나 인간은 크고 작은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고 따라서 제한된 성공 결과를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질 수는 없다. 누군가는 실패라는 결과를 수용해야만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 데에는 ‘학습된 무기력’ 현상이라는 이론도 한몫했다. 심리학 연구 분야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주장해온 학습된 무기력 현상은 실패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한 이론으로, 칭찬이나 보상을 강조하는 스키너(Skinner) 교수의 행동주의 강화이론(Reinforcement Theory)과 함께 실패는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독약과 같은 것이고 절대적으로 기피해야 하는 것으로 각인돼 왔다. 그런데 학습된 무기력 이론을 만들어낸 셀리그만(Seligman) 교수조차도 실패는 항상 파괴적인 것은 아니고 실패 경험을 하는 사람들의 30% 정도는 실패에 저항하고 실패를 통해 낙관적이 된다는 ‘학습된 낙관성’ 개념을 새로이 내놓으며, 긍정심리학을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실패-성공프로젝트, 잘 실패하기, 실패펀드, 실패박람회
한때 서점가를 휩쓴 ‘그릿(grit)’ 역시 불굴의 의지와 끈기를 의미하는 용어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즉 좌절을 딛고 일어나서 도전하는 열정과 결합된 끈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용어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자아탄력성이라고도 하는 회복탄력성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 더욱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긍정적인 힘(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특성을 주목하는 추세는 실패 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명문대학들에서도 ‘실패학’을 교과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하버드대학에서는 ‘성공-실패 프로젝트(Success-Failure Projec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과 교수들의 성공과 실패담을 되짚어보면서 학생들에게 회복탄력성을 길러주고 있다. 특히 『진짜 성공적으로 실패하는 방법』이란 책자를 발행해 실패의 바람직한 기능을 설명하고 성공적인 실패를 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한다.
명문여대 스미스대학의 ‘잘 실패하기(Failing Well)’ 프로그램에서는 ‘실패증명서’를 발행해, 학생들이 인간관계와 공부, 과외활동 등 모든 생활 속에서 아무리 많은 실패를 해도 당신이 소중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데이비슨대학에서는 창의적인 시도를 하는 학생들에게 ‘실패펀드(The Failure Fund)’라는 장학금을 지급해 실패와 실수로부터 배우기를 권장하고 있다. 지금은 ‘Try It Fund’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이 프로젝트는 150달러~1,000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데, 이 펀드를 신청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실수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 이를 통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의 특성을 본받을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실패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일례로 2018년 9월 14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실패박람회(Failure EXPO)’가 개최되었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벤처사업가들이 모여서 실패담을 공유하는 ‘FailCon’이라는 컨퍼런스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이는 이 박람회의 목적은 실패 경험이 성장의 발판이 되는 사회 구현으로, 국민의 다양한 실패사례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장을 마련하여 실패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전남 콘텐츠코리아 랩’이 전남 여러 곳에서 개최한 ‘실패학 콘서트’ 등, 최근까지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실패 관련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을 위한 건설적 실패이론서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해서 개인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서 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것을 중요한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실패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자주 보도될 때마다 실천적 학문인 교육심리학 전문가로서 할 일을 제대로 했는가에 대한 자책감과 실패를 연구한 학자로서 방관자로 살아왔다는 죄책감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동안 쌓아 놓은 실패 경험의 긍정적인 측면을 일반 대중에게 알려서 실패 경험을 기피하려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