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61년부터 2024년까지 대한민국을 책임졌던 총 열 정권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는 그간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발전을 이루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했다. 우리는 그처럼 기적적인 과정을 거친 후 선진국이 되었고,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이라는 그 황폐한 기반을 딛고 이젠 세계의 극빈국과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더보기
나는 내 공무원 시작과 함께했던 그 아침, 잉크의 감각을 잊지 못한다. 갓 공무원이 된 내가 자를 대고 흰 용지 위에 일일이 직접 도표를 그리면, 그것을 대통령이 두 눈으로 확인할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그 순간만은 박정희 대통령이 공직사회에 주문한 것이 단 하나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내 나라를 반드시 잘살게 ... 더보기
나는 막강한 권한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사람들의 인권조차 함부로 유린하던 박정희 정권이 도대체 왜 교육과 주택을 공공영역에 전연 잡아두지 못했는가를 물을 수밖에 없다. 그 후과(後果)가 지금 와서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정희 정권이 사교육과 부동산 문제에서 손을 놓아버린 대가를 단단히 치르고 있다. 국가는 강력한 선진... 더보기
우리는 모든 것을 철권으로 다스렸던 박정희의 시대를 떠나보냈다. 다시 군인 대통령 시대를 맞이했을지언정, 이제 박정희 통치기와 같은 일인 치하의 정치는 존속할 수가 없었다. 유능한 경제관료 몇몇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에게 다소나마 의지하던 박정희를 근거리에서 지켜보며, 전두환은 아마 이것을 직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뛰어난 경... 더보기
지금도 경제관료들은 욕을 많이 먹는다. 사회의 다른 제반 사항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인 경제성장만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영혼 없는 정권의 도구라는 비아냥도 듣는다. ‘관료주의’로 대표되는 경직성, 비효율성, 부정부패 등 나쁜 이미지들이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경제관료들에 유독 덧씌워지는 경향도 있다. 과거에 만연했던 부패의 과오도 있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기재부 출신 관료라는 배경 탓에 끊임없는 선입견과 루머에 시달렸다. 뒤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특히 노무현 정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할 당시엔 억울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자기변호를 할 생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통령께 부담을 지워드리는 것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라 다짐하며 끝까지 입을 다물었을 뿐이다.
― 「제2부 테크노크라트의 시대: 1980-1988, 전두환 정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