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여행을 따뜻하게 노래하는 이야기
여행은 누군가에겐 두근두근 기다려지는 것이거나 버킷리스트일 수 있는데 또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럽고 번거롭고, 떠나고 돌아오는 그 모든 일이 딱 질색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을 여행에 비유할 만큼, 태어나고 나면 떠나고 돌아오는 일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여행이 인생과 비슷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져 있던 2020년, 가만히 멈춰 서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돌아보게 해 주었던 그림책 《우리가 잠든 사이에》의 작가 믹 잭슨과 일러스트레이터 존 브로들리가 다시 뭉쳐 새로운 그림책을 만들어냈다. 이번에는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재빨리 재개한 ‘여행’에 관한 그림책이다. 여행이면서 인생 여정이기도 한 이야기를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그림책 《어떤 여행을 하고 싶니?》가 봄볕에서 출간되었다.
태어나자마자 떠나는 길고 긴 여행길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길고 긴 여정에 들어서게 된다. 대부분 침대나 유아차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도 잠시 몸을 뒤집고 기곤 한다.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아장아장 걸으면 수평의 세상이 수직의 세상으로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계단을 오르고 창밖을 내다본다. 걸으면서 겪는 일은 모두 신기한 탐험이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면 세상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두 눈이 휘둥그레지다. 자전거를 배우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도 있다. 더 자라면 버스나 기차를 이용할 것이다. 친구네 집부터 아주 먼 곳까지 가 보기도 한다. 인간은 심지어 잠이 들 때도 꽤나 움직임이 요란하다. 이불 속에서 구르고 몸을 뒤집는다. 꿈속에서는 더 놀라운 일도 많이 해본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보다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진다. 지팡이 같은 도구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고 예전만큼 멀리 갈 수도 없다. 하지만 느려진 속도에 적응하고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가만히 한 곳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가치를 알게 된다.
자연 속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도 하나의 여행
인간만 그런 건 아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만의 길을 간다. 두더쥐처럼 은밀한 길을 다니는 생명체도 있고 철새들처럼 상상할 수 없이 먼 길을 날아가는 동물도 있다. 우리 주위에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조용히 움직이는 존재도 있다.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는 꿀벌의 움직임은 분주하고, 어느 순간 저만치 가 버리는 구름의 움직임은 놀랍고, 부지런히 거미줄을 만드는 거미의 움직임은 고요하다. 겨울이 오면 어디론가 숨어드는 동물들도 있다. 그해의 여행을 끝낸 동물들은 조용히 잠에 빠져든다. 달마저 차올랐다가 보름이 지나면 이지러지고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동 수단은 여행에 날개를 달아
인간이 만든 탈것의 움직임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다. 자전거, 달구지, 마차, 버스, 기차, 자동차와 하늘을 나는 비행기, 열기구, 우주선 및 바다를 누비는 보트, 유람선, 뗏목 등등 셀 수도 없이 많은 탈것들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조금 더 멀리 가기 위해 발명해낸 것이다. 인간은 늘 먼 곳을 동경해왔다. 내 고장과 달리 날씨가 몹시 추워서 호수와 강물이 꽁꽁 어는 나라도 있고 일년 내내 비 한 방울 안 내리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나라도 있다. 그런 나라를 가기 위해 인간은 탈것과 함께 여행을 한다. 새로운 모험을 좋아하는 인간은 나무통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들어 무모한 비행을 시도하기도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길을 가기
그렇다면 이 그림책을 읽는 독자는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을까? 저마다 각양각색의 여행을 꿈꿀 것 같은데 제일 먼저 자기만의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 좋겠다. 가까운 친구네 집을 어떻게 가는지, 우리 동네는 어떻게 생겼는지 쉬운 것부터 해보는 것이다. 하나의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힘든 점은 어떤 게 있을지, 오가면서 겪는 힘든 일도 상상해 보기를 권한다. 상상해 본 일을 어느 날 실천해 보는 것도 좋다. 머릿속에 그렸던 지도를 따라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재미난 일을 겪을 수 있다.
때로는 늑장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려던 여행을 포기할 때도 있다. 매 순간 바쁜 하루의 여정을 숨 가쁘게 해내야 하는 우리이기에 아주 가끔은 잠시 멈춰 쉬어 갈 수도 있다. 가만히 멈춰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필요하다. 세상이 흘러가는 고요하면서도 분주한 움직임을 지켜보다 보면 그 속에 있는 내가 보일 테니까.
이 책의 작가는 여러 여행과 여정을 보여주면서도 순간순간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의 의지대로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잠시 멈추기도 하는 그 모든 여행의 중심에는 ‘자신’이 있다. 그렇게 묵묵하게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고 여행이라는 진리를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언어로 이야기해 준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에서도 보았듯이 존 브로들리만의 독특한 그림은 한 장면 한 장면 꼼꼼하게 살펴보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복잡한 미로의 패턴, 나무의 결, 논밭의 무늬, 강물의 줄기 등은 작가 믹 잭슨이 말해 왔던 수많은 여정을 시각화한 듯이 보인다. 나이아가라 폭포 물줄기에도 존 브로들리만의 표현 방식이 녹아 있다. 그림과 글을 번갈아 읽어 보면 이 그림책의 재미를 배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