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폭로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목소리를 낸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블레이크는 시를 통해 경험 세계의 억압과 착취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전을 제시한다. 블레이크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인 「런던」에서 산업혁명으로 거대하게 팽창한 런던은 산책자의 관점에서 볼 때 전혀 더 이상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다. “특허받은”의 반복은 런던에 부과된 법률에 대해 화자가 어떻게 느끼는지 보여준다. 법적 제한과 소유권이 자연의 영역인 템즈강에까지 적용되며 국가의 억압을 피할 수 있는 곳은 런던 어디에도 없다. 화자는 런던을 모든 사람에게서 “슬픔의 흔적”이 보이는 도시로 제시한 후 이어서 “울음소리”와 “마음의 수갑 소리”가 들리는 청각적인 풍경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특허받은 템스강이 흐르는
특허받은 거리를 헤매다가,
마주치는 얼굴마다
슬픔의 흔적, 나약함의 흔적을 본다.
모든 사람의 모든 울음소리에서,
모든 아기의 겁에 질린 울음소리에서,
모든 목소리에서, 모든 금지령에서,
마음의 수갑 소리를 듣는다.
어떻게 굴뚝 청소부의 울음소리에
음흉한 교회가 벌벌 떨고,
운 나쁜 군인의 한숨이
핏물 되어 궁궐 벽을 따라 흐르는지 듣는다.
무엇보다 한밤중 거리에서
어떻게 어린 매춘부의 저주로
갓난아기의 눈물이 말라버리고,
역병으로 결혼 영구차를 망치는지 듣는다.
- 「런던」 전문
이러한 경험 세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블레이크는 다른 시에서 그 대안을 ‘대립하는 순수와 경험이 함께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순수와 경험은 대립하지만 함께하는 것’
윌리엄 블레이크의 대표 시를 만나다
블레이크는 경험의 세계에 살면서 순수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순수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순수의 전조」에서 더 높은 수준의 순수의 징표를 찾을 수 있다. 블레이크는 우리가 “모래”나 “들꽃” 같은 작은 사물에서 어린아이 같은 경이로움을 느끼고 경험의 밤에 예언자가 본 빛나는 잠재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즉 더 높은 수준의 순수를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손바닥 안에 무한을 꼭 쥐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한 알의 모래에서” 보는 세계는 경험의 세계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찬 더 높은 수준의 순수로 찬 세계다. 나아가 “모래”나 “들꽃” 같은 작은 사물에서 무한과 영원을 쥘 수 있는 비전으로 확대된다.
시간을 뛰어넘어 언제까지나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시
한울세계시인선은 국내의 유수한 번역자들과 함께 뛰어난 시인들의 대표 시들을 번역·소개하고자 기획되었다. 2024년 6월 1차 출간으로 여덟 권의 시선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시에는 저마다의 목소리가 있다. 한울세계시인선은 시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쉬운 언어로 담아내기 위해 번역에 힘썼다. 책의 말미에 옮긴이가 쓴 해설은 이해를 풍부하게 할 것이다. 이번 1차 출간에 이어서 2025년에도 10여 권의 시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샤를 보들레르 등 대중성 있는 시인들의 시선집에 이어 2차 출간 역시 헤르만 헤세, 괴테 등 시간을 뛰어넘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시 세계가 담긴 시선집을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