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하는 활동가’ 혹은 ‘운동적인 연구자’가 세상과 관계 맺는 두 가지 방법
첫 번째, 글쓰기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5분이면 온갖 것에 대한 ‘꿀팁’을 찾아낼 수 있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지식을 구하고 자기화하여 정연한 글을 써내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취미 생활용 ‘꿀팁’을 찾는 이들의 글쓰기 사례를 상세히 제시한다. 모호함과 복잡성을 견디고 스스로 탐색하는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고, 돌아온 답변을 기점 삼아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운다. 즉 지식은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물론 고통스러우나 그만큼 즐겁기도 하다.
취미 생활을 위해서라면 지식을 구성하고 개인적으로 적용하는, 고통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멈추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직업적 연구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연구자는 “기존의 지식 체계를 활용하는 한편 그 안에서 해당 체계의 일부가 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글은 같은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논문이든, 학계 바깥의 일반 독자를 향한 칼럼이나 단행본이든 “타자를 향한 말 건네기”가 되어야 한다. 연구는 “진리 탐색의 새 결과물이 지식 체계의 일부가 되게끔 정연하고 설득력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발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지적인 글쓰기에서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 실수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잠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운이 좋다면 짧게라도 말을 걸어볼 수 있도록 붙잡기 쉬운 작은 손잡이 하나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목표는 다가서는 과정이 지난한 데다 근본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저자는 거듭, 새롭게 계속하려는 시도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다른 생각과 지향을 가진 상대의 세계에 “하나의 의미 있는, 주의를 기울여볼 만한 질문이나 제안”을 전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일 테다.
두 번째, 조직 운동
“대학원생이 무슨 노동조합? 그럼 고등학생노동조합, 초등학생노동조합도 생겨야 되겠네?”
대학원생노동조합 출범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 같은 반응도 무리는 아니다. 대학원생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진학하는 상급 교육 과정으로서의 대학원에 다니며 등록금을 내고 그에 걸맞은 교육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로서만 존재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수업조교, 연구조교, 행정조교, 학회 간사 등 대학원생에게 주어지는 직책과 그에 따르는 업무를 소화하다 보면 정작 공부와 연구에 할애할 시간은 충분치 않다. ‘대학원생의 노동’이 실재하며, 그 양과 강도는 흔히 말하는 ‘대학원생의 본분’을 위태롭게 할 정도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은 꾸준히 외면 받아왔으며, 대학원생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호 받을 길은 자연히 요원해진다.
2016년 겨울,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학과사무실 조교 근로장학금 삭감 사건을 마주한 저자와 동료들은 대학원생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한다. 2018년 마침내 대학원생노동조합이 출범하기까지, 그리고 대학원생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대학원의 현실에 대한 바깥의 몰이해와 대학 본부의 저항은 물론 내부, 그러니까 대학원생-조교 당사자들의 망설임도 맞닥트려야 했다. 나름의 규칙 안에서 조용히 움직이기를 선호하는 본래의 성품을 거슬러 수많은 변수를 감내하고 이해관계가 다른 이들과 대면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던 건 “대학 내에서 일하는 대학원생이 노동자성을 지님을 인정하고 그 권리와 역할을 제도로써 공식화하는 가운데 대학을 민주적으로 다시 구성해내”는 일에는 집단을 조직하고 정치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 불가피함을 알았기 때문일 테다.
조직 운동을 하는 대학원생은 ‘학문의 순수함’을 뒤로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인다는 비난을 피해 가기 어렵다. 그러나 대학 본부를 비롯해 기존의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진영조차 다양한 정치적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마당에 굳건히 자리 잡은 현실에 균열을 내고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쪽이 탈정치적 순수성에 대한 강박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음은 자명하다. 대학 본부와 전임 교원이 내린 제도적 결정에 순응하는 ‘미성숙한 피교육자’의 위치를 벗어나 뒤에 올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뒷받침할 구조를 내포한 지식 생산의 토양 또한 함께 건”넬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 역시 “이 직업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로 결정된 순간 부과된 책임”임을 강조하며, 저자는 “조직된 연구자들의 개입과 실천이 억압적 관성에 따라 주조되어온 대학의 역사 내부에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의 꿈이라는 대안적 역사를 적어 넣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자 믿음, 꿈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