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詞), 가장 정적인 감정 문학
문학은 인류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실이든 가공이든, 그리고 설사 가공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과 세상을 기초로 그들과 그곳의 이야기를 토로하기에 충분하다. 중국 문학 역시 오랜 시간 중국이라는 공간에서 살았던 이들의 정서와 모습을 여러 형식을 통해 드러낸다. 시(詩)는 시대로, 사(詞)는 사대로, 곡(曲)은 곡대로, 소설(小說)이나 산문(散文)은 소설이나 산문대로, 각각의 특징을 발휘하며 그들을 위로했고, 받아 주고 다독였다. 그런데 특히 이 중 사 문학(詞文學)은 중국의 문학 형식 중 가장 정적인 감정 문학이다. 중국 역대의 문인들은 각각의 형식에 맞추어 공개해야 할 자신들의 내면을 구분하고 그 표현의 수위와 정도를 조절했는데, 사 문학에는 아무에게나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보일 수 없는 은밀한 감정과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에는 정면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시인(詩人)으로서의 심정을 노출했다면, 사에는 가려진 이면에 잠재된 사인(詞人)의 진심을 노출했다.
안수, 송사(宋詞)의 전범을 제시하다
사는 만당(晩唐)과 오대(五代) 때, 전문적인 문인사(文人詞)를 시작으로 송대(宋代)에 절정을 이루었다. 흔히 언급하는 ‘송사(宋詞)’라는 표현은 이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송대에 그 절정의 토대를 구비한 사인이 바로 안수(晏殊)다. 안수는 10대에 이미 천재성을 인정받아 관직에 진입했고 평생 별다른 굴곡 없이 평탄하게 관로를 완주했다. 그래서 그의 사 문학 역시 사회 고발이나 정치 풍자가 아닌 성대하게 잘 차린 연회에서 마음껏 잘 마시고 잘 즐기는 내용, 그리고 장수하며 이를 오랫동안 누리고 싶다는 소망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냉정히 보자면, 주제 의식은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안수의 사가 송사의 전범으로 제시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축을 기반으로 하는 완약사(婉約詞)의 표본
오로지 감동만을 장착한 채 시종일관 작가가 구성한 깊은 심해에서 강한 감격으로 독자를 환호하게 하는 것도 수작이지만, 요동치는 감동은 아니더라도 절제와 함축으로 일관된 절도 있는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가는 것도 수작이다. 안수는 만당·오대의 화간사풍(花間詞風)을 이어, 북송의 사체(詞體) 중 특히 소령(小令)의 모범을 형성했다. 그 사의(詞意)의 중의성은 고도의 문학적 함축으로, 이 때문에 안수의 사를 세련된 소령의 모범으로 추대한다. 그리고 이는 중국 문학 중 최고의 감성 문학인 사 문학의 토대를 구축한 안수의 공로이며, 그 사 문학의 가치다. 안수가 이룩한 ‘함축을 기반으로 하는 완약사(婉約詞)의 표본’은 완약을 종주로 하는 사 문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안수는 1만 수가 넘는 사를 지었으나 현재는 〈〈주옥사〉〉에 수록된 136수만이 전한다. 이 책에는 판본별로 차이를 보내는 작품들까지 모두 소개해 총 140수를 수록했다. 중국 시 문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 특히 송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야 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