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일은 64가지 길 안에 있다.”
주역은 인간 세상의 결을 가르쳐준다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뜻으로,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만큼 책을 읽고 또 읽었다는 데서 유래한 고사성어 위편삼절(韋編三絶)은 공자의 이야기다. 공자가 그렇게 여러 번 읽은 책이 바로 《주역》이다. 공자를 사로잡은 《주역》은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21세기인 지금까지 읽히고 있을까?
《역경》이라고도 불리는 《주역》은 간단히 말하면 점친 기록을 모은 책이다. 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할 때 점을 쳐서 결정했던 은나라 시기 점인들이 그 결과를 체계적으로 보관한 것에서 시작됐다. 틀린 것은 삭제하고 맞는 것은 이후 비슷한 점을 칠 때 참고하기 위해 계속 남겨두었다. 이 과정을 수천 년 동안 이어갔다. 점인들이 분류하면서 보니 결과가 총 64가지 범주로 나뉘었다. 즉, 사람이 살면서 맞닥뜨리는 일의 종류가 딱 64가지뿐이라는 것. 그렇게 정리된 것이 지금의 《주역》이다. 결국 《주역》은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세상일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한 책이다. 저자 강기진은 《삶이 불안할 땐 주역 공부를 시작합니다》에서 《주역》이라는 책의 탄생 과정부터 시작해, 조직을 이루는 일이나 조직을 개혁하는 일, 손실을 보는 길과 이익을 보는 길 등을 예시로 들어 64괘 즉, 64가지 인생길이 어떤 식으로 책 안에 담겨 있는지 쉽게 알려준다.
공자는 이미 정해진 인생길들을 왜 그렇게 열심히 읽었을까. 그것은 《주역》에는 삶에 필요한 지식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단계’에 맞는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자처럼 우리도 큰일 혹은 삶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면 《주역》을 통해 이후의 일을 대비할 수 있다.
“불안은 자신이 삶의 주체라는 증거다.”
주역은 불안에 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도록 돕는다
저자는 《주역》에서 64가지 인생길만큼 중요한 것은 인생의 단계라고 말한다. 팔괘와 팔괘가 만나서 64가지 인생길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각 6단계가 완성된다. 팔괘라는 말이 낯설 게 느껴질 수 있으나 사실 가까운 데서 찾을 수 있다. 태극기의 ‘건곤감리’가 바로 팔괘에서 온 것. 저자는 팔괘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고, 이 팔괘가 64가지 범주를 만들면서 필연적으로 생긴 ‘인생의 단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각 인생길마다 있는 6단계 중 자신이 지금 몇 단계에 있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는 것. 우리가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는 건 앞이 보이지 않고, 삶이 정처 없이 표류한다고 느낄 때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만약 자신의 위치를 알면 《주역》에서 그 다음 행동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주역》이 ‘군자’라는 주인공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라고 표현한다. 군자는 그렇게 64가지 인생길을 걷는 동안 변화를 겪고 깨달음을 얻으며 하나씩 도를 터득하는 사람이다. 군자는 성인이 아니다. 우직하게 돌아갈 때가 있는가 하면, 권모술수를 택할 때도 있다.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여러 갈등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각자 자신의 인생길을 걷는 우리도 《주역》의 주인공이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을 갈 때는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지도와 가이드북이 필요하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이라는 여행 중에 만나게 될 모든 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주역》은 든든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세상은 변화의 법칙 안에 있다.”
주역의 메시지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주역》의 팬이었다. 《주역》에서 중요한 ‘세상의 결’에 심취했고,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일에는 법칙이 정한 과정이 있다는 《주역》의 사상을 자신의 책에 쓰기도 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는 자신이 제기한 상보성의 원리가 이미 《주역》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후 기사 작위를 받을 때 자신의 가문 문장에 태극을 넣었다.
《주역》은 세상의 존재 법칙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수천 년 동안 어긋난 적이 없는 법칙들이기에 동서고금을 초월해 사람들의 감응을 불러일으켜 왔다. 저자는 《논어》 《맹자》 《명심보감》 등 중국 고전부터 성경 구절,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 정약용의 편지, 애덤 스미스의 글, 푸시킨의 시 등 다양한 예시를 통해 《주역》의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 우리는 소로의 《월든》을 읽으면서 《주역》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인 ‘믿음이 있다’는 것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고,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정 스님의 유명한 글에서 ‘비인과는 말을 섞지 말라’는 《주역》의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다.
고전의 문장을 우리의 삶으로 끌고 오는 것은 어렵다. 특히 《주역》처럼 오래된 책은 더욱 그렇다. 《삶이 불안할 땐 주역 공부를 시작합니다》는 친근한 방식으로 《주역》에 담긴 인간 세상의 진리를 수월하게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놀랍게도 우리가 제아무리 다사다난한 인생을 산다고 한들 64가지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힘들다 해도 옛사람들의 지혜로부터 세상의 결, 인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니,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한다. 《주역》이 21세기에도 읽히는 건 아마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