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칸의 삶과 건축은
과거의 시간에 갇히지 않는다
『루이스 칸: 벽돌에 말을 걸다』는 크게 두 가지의 흐름으로 전개된다. 방대한 양의 인터뷰, 서간, 일기와 메모, 강연, 그리고 노트와 연구 문헌 등을 집대성하고 정리해 루이스 칸의 삶과 업적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한 내용이 하나의 주요한 흐름이라면, 칸의 대표 작품 「소크 생물학 연구소」, 「킴벨 미술관」,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인도 경영 연구소」를 직접 답사하고 그 내용을 담은 〈현장에서〉라는 에세이가 또 다른 흐름이다. 이 현장 답사 에세이는 작가만의 섬세한 시선과 내밀한 관점이 잘 담겨 있는데, 이는 칸의 생애와 업적을 바탕으로 기록한 연대기적 기술과 상응하면서 건축가 루이스 칸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방대한 양의 기록과 자료, 인터뷰 등으로 복원된 루이스 칸의 삶에 작가의 현장 에세이가 더해짐으로써 더 이상 칸과 그의 건축물은 과거의 시간에 갇히지 않는다. 이것은 한 공간 안에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빛, 형태, 질감 등을 발견하면서 〈존재〉를 감각하고자 했던 칸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총 다섯 장으로 구성된 작가의 답사 에세이는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어 단숨에 칸의 건축물 내ㆍ외부를 함께 거닐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우리는 저자의 현장 에세이를 통해 칸이 설계한 건축물을 경험하고 그 구조에 다가감으로써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존재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현장감은 다른 평전에서 볼 수 없는 『루이스 칸: 벽돌에 말을 걸다』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한 지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 평전 안에 가득 차 있는 〈방대한 기록〉과 〈서정적인 묘사〉를 통해 칸과 그의 건축을 그 누구보다 심도 있고 공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위대한 건물, 위대한 구조는, 때때로 이미 죽은 것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느낌을 전해 준다. 어쩌면 최상의 건축은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칸의 빛과 그림자,
시작과 본질에 말을 걸다
이 평전은 1974년 칸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에서의 유년 시절, 미국으로의 입항, 세계적인 건축가로 주목받고 도약하기까지. 저자는 칸의 궤적을 따라 광범위한 문헌과 기록, 일기와 메모, 인터뷰 등과 같은 남겨진 모든 자료를 집대성해 〈칸〉을 복원한다. 칸의 천재적인 재능과 업적, 숨기고 싶은 비밀스러운 관계와 치부까지. 저자는 이 평전에서 칸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 망설임이 없다.
유년 시절부터 칸은 음악과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내성적인 성격은 예술적 재능과 발견으로 대체된다. 칸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몰아붙이는, 과단한 면이 있었고 곧 건축을 발견하고 〈건축〉은 예술적 열망의 〈대상〉이자 그의 모든 것이 된다. 그런 칸에게 고질적인 문제가 뒤따랐는데 바로 경제적인 문제였다. 자신의 건축 회사를 설립하고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경제적 이윤 추구는 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때문에 칸의 회사는 늘 적자였고, 때로는 직원들에게 급여를 줄 수 없을 만큼 어려웠다. 이처럼 만성적인 적자는 수십 년간, 아니 평생에 걸쳐 지속되었고 사망 이후, 그가 약 46만 달러에 가까운 부채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동료와 직원들이 증언했듯이 칸은 〈수완 좋은 건축가〉가 아니었고, 다만 〈예술적 본질을 추구했던 건축가〉였다. 비록 그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제때 월급을 받지 못했더라도, 칸의 비효율적인 방식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일정에 맞추어 진행되는 평범한 작업은 칸이 천천히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내는 걸작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칸에게 공식적으로 아내 에스더와 딸 수 앤을 가족으로 두었지만, 그 외에 숨겨진 관계, 해리엇, 마리 궈, 앤 팅이라는 세 명의 여성과 슬하에 너새니얼과 알렉스라는 두 자녀가 있었다. 저자는 칸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관계를 포장하지 않는다. 평전은 칸과 얽힌 복잡다단한 관계 속에서 〈정부〉와 〈혼외자〉라는 이름으로 겪어야 했을 이들의 아픔과 고통, 아버지 칸에 대한 그리움을 과감 없이 적시한다. 너새니얼는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 애정과 원망이 섞인 말을 전한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요. 〈대체 무슨 생각이었어요? 대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루이스 칸은 반세기 동안 대략 235개의 설계를 했고 이 중에서 81개가 실행되었지만, 1952년 이후 완성된 그의 40여 개의 작품 가운데 우리가 손에 꼽을 수 있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했다. 「소크 생물학 연구소」,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 「킴벨 미술관」,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 「인도 경영 연구소」, 「트렌턴 배스 하우스」, 「루스벨트 포 프리덤스 공원」 등과 같은 그의 대표적 건축물이 어떻게 계획되고 훗날 어떻게 완성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는 드러나는 칸의 건축 철학과 예술적 사유 등을 마주할 수 있는 점도 이 평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킴벨 미술관」의 고측창에 드리워진 빛과 은빛 표면의 역할, 소크 프로젝트에서 폴디드-플레이트 설계안을 위해 1년 넘게 시간을 쏟고 결국 설계를 바꿔야 했던 일, 콘크리트가 완벽한 재료라는 사실을 깨닫고 콘크리트라는 재료에 더 깊이 빠지게 된 계기, 「필립스 엑서터 도서관」에서 구조를 통해 받게 되는 감각, 「예일 대학교 아트 갤러리」의 기하학적 천장을 설계되는 과정, 그리고 루이스 칸의 화상 흉터와 콘크리트와 재료의 불완전함으로 해석하는 잭 매칼리스터의 흥미로운 인터뷰 등이 그것이다. 특히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의 모스크가 착안되는 극적인 순간이 인상적으로 서술된다.
이 평전에서 저자가 루이스 칸의 삶을 돌아보고, 그가 이룬 건축을 통해 통찰하고자 했던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건축, 본질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창조성과 그 믿음일 것이다. 건축은 우리에게 찾아온다. 계단을 오를 때 그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빛과 형태, 질감을 새롭게 마주하고 발견하는 것처럼. 건축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루이스 칸. 그를 읽고 나면 우리의 공간이 새롭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왜냐하면 계단이 넓은 이유는, 올라가는 데 여유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 계단을 오르는 일 자체가 이 건물에서 경험하는 사건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할 만큼 대담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단도 건물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며, 또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계단을 마음속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또 계단을 오르면서 당신이 환영받고 있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