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해방 이후 부산의 현대사를 주요 사건별로 정리한 것이다. 1부는 〈6.25 전쟁과 부산〉이라는 타이틀로 6.25 전쟁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다루었다. 부산은 품이 넓은 도시다.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은 피난 도시가 되었다. 부산은 임시수도도 받아들였고 피난민도 받아들였고 갈 곳 없는 기업도 받아들였다. 전쟁 중 부산은 작은 공화국이었다. 이북도 서울도 전라도도 경상도도 충청도도 강원도도 제주도도 있었다. 좌파도 있었고 우파도 있었다.
작은 공화국에서 반짝이며 용솟음친 것은 자유였다. 소설가 이호철의 자유사상이 발원한 곳은 다름 아닌 전시의 부산이었다. 부산 사람들은 자유의 깃발 아래 뭉쳤고 수많은 학도병이 몸을 던져 부산교두보 전투에 임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었다. 부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충신 중 충신이었다. 부산이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다.
부산은 전쟁이 남긴 부(負)의 유산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해방 직후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가 전쟁통에 100만 대도시로 부풀었다. 부산은 어떻든 이런 인구를 부양하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전쟁 이후 부산은 먹고사는 문제, 주택문제, 물 문제, 전기문제, 도시환경 문제 등 여러 문제가 폭증했다. 중앙정부나 부산시 당국은 문제 해결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주체는 자유로운 개인들이었다. 김 씨나 천안 색시 그리고 광석이 아저씨는 죽을 둥 살 둥 맨몸들로 날고뛰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이호철은 서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작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전시의 상향적 경제 운동이 그 원형이었다고 평한다.
2부는 〈10.16을 말한다〉이다. 작가는 10.16 부마항쟁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는“1979년 10월 16일”이라는 글에서 부마항쟁 발생사를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운동권 중심 사관과 역사 왜곡”은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간한 보고서가 10.16 발생사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를 규명했다. “가짜에 휘둘리는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은 가짜 사진, 동영상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부마항쟁 기념식 문제를 다루었다. “10.26의 회상: 박정희와 김재규”는 부마항쟁 당사자로서 10.26을 돌아본 글이다.
3부는 〈부산의 운동과 정치〉를 다루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과 부마항쟁”은 부산 출신 남민전 조직원이 당시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남민전과 부마항쟁의 관련성을 추적하면서 문제를 제기한 글이다. “부산양서협동조합과 비밀서클”은 양협의 설립 취지와 다른 사회주의 의식화 운동이 비밀리에 진행된 사실을 밝혀낸 글이다. “베트남전쟁의 기억과 부산”은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들의 기념탑 건립 운동, 부산 운동권의 『사이공의 흰옷』출판, 작가의 하노이 방문기를 각각 언급하면서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이 얼마나 상이한 것인가를 조명했다. “김영삼·노무현·문재인: 부산 출신 대통령의 좌우 분립”은 북한 문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 김영삼은 자유ㆍ우파, 노무현ㆍ문재인은 진보ㆍ좌파 정치가로 분립되었다고 평가한 글이다. “문재인은 신영복주의자?”는 『시월, 청년이 온다』는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신영복주의는 상충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4부는 〈부산의 정체성을 찾아서〉이다. “경부성장축과 부산의 몰락”은 수도권 일극 중심 체제 하에서 부산경제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논하면서 부산의 활로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탐문하고 있다. “부산은 보수인가 진보인가”는 여러 논자가 제기한 부산=보수도시 논쟁을 다룬 글이다. 작가는 부산은 보수가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단색적인 보수도시로 규정하는 것은 부산을 잘못 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밖에도 엑스포 유치운동의 문제점, 10.16 부마항쟁 기념관이 없다는 문제, 신경림 시인의 성찰, 독립 좌파를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