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신들의 관계
명료하게 드러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윤곽
이 책은 오디세우스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판(pan)신, 아폴로, 포세이돈, 아테나, 헤파이스토스로 전개된다. 신들의 관계라는 제목하에 나열된 이 흐름은 여타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다룬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소 생소한 구성이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신들의 관계에 몰입하다 보면, 관계라는 키워드로 읽는 관점이 어떻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합적이면서도 깊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지 실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 델포이 신탁을 통해 트로이 원정으로부터 귀향하기까지 20년에 걸린 오디세우스, 그러는 사이 그의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를 염소로 둔갑하여 꾀어낸 헤르메스, 그 둘의 관계로 태어난 반인 반염소인 판(pan)신. 한편 귀향길에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만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키클롭스의 눈을 찌른 오디세우스, 그러나 키클롭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이었기에 이후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을 꾸준히 방해한 포세이돈.
한편 판신은 아폴로에게 자신의 예언술을 전술하고, 아폴로는 원래 포세이돈의 땅이었던 델포이를 자신의 땅 포로스 섬과 맞바꾼다. 이로써 델포이는 완전한 아폴로의 신탁 장소가 된다.
포세이돈은 도시 아테네의 신이 되기 위해 아테나와 경합하지만 아테나의 승리로 마무리. 아테나의 신전에서 미녀 메두사를 덮친 포세이돈, 이에 심기가 불편해져 메두사의 머리를 뱀이 우글거리는 괴물로 만든 처녀의 신 아테나. 제우스가 혼자 낳은 딸 아테나와 헤라가 혼자 낳은 아들 헤파이스토스. 그리고 아테나에게 음심을 품었던 헤파이스토스의 헤프닝 등등.
엎치락뒤치락 엉킬 대로 엉킨 신들의 관계는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지만, 저자는 연관성에 따라 하나하나 이어주고 풀어냄으로써 오히려 신들의 관계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우리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는 너무나 익숙한 고전이지만, 뭔가 정리되지 않은 채 좀 더 알고 싶은 영역으로 남아있기 일쑤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확고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추상적으로 떠도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틈새를 메워 단단한 교양으로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