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이상찬은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정년을 맞이하고 현재는 밤하늘에 별을 볼 수 있는 양평의 설매재 와우헌(臥牛軒)에서 작품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한학자인 할아버지 포암 선생으로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한학 수업과 함께 한시 작법을 공부하면서 보냈다. 열다섯 살 나이에 이미 소학, 대학 중용, 논어 등 고전을 모두 익혔다. (한)시화집 노년에 만난 열다섯 살 소년의 1∼2부에 실린 한시(漢詩)는 저자의 나이 불과 열네댓 살 때 지은 시로, 나이에 비해 깊은 철학적 사고와 뛰어난 기량을 보여 그의 어린 시절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시(漢詩)라면 한글세대와는 거리가 먼 어려운 장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상찬의 (한)시화집은 꽃을 감상할 때 일반적으로 꽃의 생태학이나 식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을 직관하듯, 또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는 음식 고유의 담백한 맛을 즐기듯 독자 역시 열다섯 살로 돌아가 소년의 눈높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년다운 덜 익은 풋풋한 감성을 느껴 볼 수 있다.
화중유시(畵中有詩)요, 시중유화(詩中有畵)라 했다. 한 편의 시 속에서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하고, 한 폭의 그림에서 시를 연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찬의 시화집은 삽화와 함께 선사인들의 염원이 담긴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절제된 선과 면, 오방색을 통하여 제작된 “근원-선사의 기원” 연작을 적절히 배치하여 시와 그림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3부에 실린 “선사의 기원”(222쪽)은 1995년 대학원생들과 반구대를 답사하고 난 뒤 쓴 글이며 “근원-선사의 기원” 작품의 출발점이 됐다고 한다.
미술평론가 김상철에 의하면 화가 이상찬은 늘 청년의 심장을 가진 작가다.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현상으로 보자면 작가는 다변의 작가이다. 다양한 재료와 형식으로 점철된 그의 작업 역정은 그야말로 반복적인 자기부정을 통해 새로운 것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었다. 이는 개인이 지니는 건강한 작가 정신의 발현인 동시에 그가 감내했던 역동적이고 치열했던 시대적 가치의 반영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통적인 수묵과 채색은 물론 동유화와 흙, 종이 등을 이용한 다양한 재료를 차용한 실험적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일정한 시기적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그의 이상과 지향을 구체화하고 있다.
작가 이상찬은 “오방색은 어떠한 색하고도 섞임 없는 순수한 원색을 의미하며 맑고 경쾌한 색이다. 따라서 우리의 민화에서 이 오방색의 투박하고 강렬한 부딪침은 강한 현시성과 함께 원시적인 생명력마저 느끼게 한다. 민화의 색은 서럽디서러운 우리 민족의 한(限)과 신명이 묻어나는 흥(興)의 색이요, 미숙과 미완의 색이자 완성의 색이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상찬의 작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