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의 욕망은 모두 단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성장과 부의 증식, 돈이 최고의 목표이며 가치가 된 시대. 우리는 부자 되기라는 단 하나의 동일한 지점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달음박질은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는, 나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보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오로지 스스로가 선택하고, 스스로가 자기를 채찍질하면서, 자기자신을 무한 경쟁과 무한증식이라는 전 지구화된 신자유주의적 주체화 방식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원망하거나 물리쳐야 할 적(敵)도 없고, 이런 삶을 강제한 가시적인 폭력도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강제의 시스템 안으로 우리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실존의 미학이란 “외부의 가치기준에 기대지 않고, 개체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발명하고 역량을 펼쳐내는 삶”을 사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와의 관계’가 중요하며, 타자와의 관계 또한 동시적으로 중요하다. 이 책에 따르면 실존의 새로운 주체가 된다는 것은 “내가, 나 또는 타자와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변화된다는 것은 관계성의 변화와 동시적인 사태다. 이 관계성의 변화가 나의 변화와 세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푸코에게 관계들이란 힘의 관계들이고, 힘 관계란 권력관계”에 다름 아니다. 실존의 미학이란 자기배려, 즉 자기 돌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주체가 되는 과정이며, 이는 권력관계의 새로운 양태를 발명해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것만이 지금과 다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 책은 말한다. 내가 다른 욕망, 다른 가치, 다른 지향을 가지고 작은 실천을 한다는 것은, 지금 같은 동일자의 사유에서 탈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런 작은 실천들이 지금과 다른 사유문법, 다른 제도, 다른 삶을 창조할 수 있다. 내가 조금 변화하면 나와 관계하고 있는 세계가 조금이지만 바뀐다.
이 책 도입부 〈통치성이란 무엇인가?〉의 문장을 보자.
“근거리에서 보면 나무는 욕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나무는 욕망한다. 태양의 빛에너지를 받아 물과 이산화탄소로부터 탄수화물과 산소를 생산한다. 나무의 광합성작용은 나무의 생명을 높게 높게 끌어올린다. 나무의 욕망은 자신과 타자를 살린다. 욕망하려면 적어도 나무처럼 욕망하자. 고유의 힘을 실험하는 욕망, 승자독식과 무한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코드의 재생산에 복무하지 않는 욕망. 자기의 꽃과 열매를 남에게 주려는 욕망. 남에게 모두 퍼주면서도 천수를 누리는 나무들” 〈이 책, 24p〉
나무는 산소와 꽃과 열매를 타자에게 여한 없이 준다. 뿐인가? 자기 몸, 자기 존재 전체를 인간에게 내놓는다. 나무는 책이 되고, 책상이 되고, 가구가 되고, 인간 삶을 관통하며 주고 또 준다. 이렇게 무한히 퍼주면서도 많게는 수백 수천 년을 산다. 어쩌면 이렇게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이기에 평화롭게 천수를 누리는 것인지 모른다.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많이 해야 하고, 정신 나간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팍팍하고 에누리 없는 이 미친 경쟁의 시스템에 제동을 거는 사유를, 그 저항의 사유를 작게라도 살아내는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실존의 미학이다.
저자는 책에서 “요가, 명상, 공부, 생태학적 연대, 공동체의 실험, 귀농 활동 등 다양한 실천들이 요즘 많이 눈에 띈다”며, 나도 모르게 침윤된 신자유주의적 주체화 방식을 거부하고 자기 품행을 스스로 구성하는 실천들이 임계치를 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다. 이 작은 것들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질전화(良質轉化)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양이 많아지면 질이 변화하는 순간이 온다.
책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이 책은 앞서 언급했듯이 미셸 푸코의 후기 사유인 《주체의 해석학》을 기본 교재로 해서 실존의 미학의 구체적 방법론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주체의 해석학》을 통해 후기 푸코의 사유인 ‘주체의 자기배려’, 즉 실존의 미학(Esthétique de L’existence)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면서 쉽게 풀어 쓰고 있다.
저자는 “나의 이 책은 주체의 자기돌봄에 대해 부드럽게 풀어 쓴 에세이”라고 설명한다. 1부에서는 푸코철학 총론을 다루며, 2부와 3부에서는 푸코의 후기작 《주체의 해석학》을 풀어서 쉽고 재미있게 써내려간다. 평소 철학을 접하지 않은 독자라도 조금 딱딱한 제1부 총론을 읽고 나면, 2부부터는 푸코의 후기사유인 실존의 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제1부는 푸코철학의 위 3시기 중, 말년의 ‘주체의 윤리학’ 시기로 이행하는 과정을 더듬는 기록이라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 (그러나) 제2부부터는 〈주체의 해석학〉에 한정해서 일상에서 잘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신자유주의 생명관리권력의 손아귀에서 놀아나지 않는 삶을 위한 실천들과 금언들이다. 나의 존엄과 타자의 존엄함, 그리고 새로운 세상의 전망에 대해 함께 생각하며, 나의 현실태에 대해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는 여정이다. 지금과 다른 실존의 방식을 자발적으로 찾는 방법론적 모색이라 할 수 있다.” - 머리글 중
저자는 《미셸 푸코, 실존의 미학, 내 삶의 예술가 되기》라는 책을 통해 실존의 미학이란 자기를 변화시키는 수행의 삶이며, 이 수행이 바로 사회적 활동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수정해서 다른 존재로 구축하는 자유란, 다르게 사회적 활동을 하는 존재의 구축이며, 이는 항시 타자를 전제로 하는 사회적 활동이기에 곧 정치적 행위가 된다”고 본다. 윤리적 행위가 정치적인 행위이며 이것이 예술적인 행위가 된다. 윤리와 정치와 미학은 고립된 것이 아니고 연결되어 있는, 다른 층위의 삶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맹목적 증식과 탐욕이 지구촌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이 무한질주에 제동을 걸고, 자기라는 기업의 경영인으로 무한성과를 강요하는 성과사회의 품행을 거부하는 작은 실천은 언제나 정치적 실천이 된다는 것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매우 소박한 행위로 나타난다. 하루의 작은 시간만이라도 휴대폰에서 풀려나기. 무엇이든 자기만의 리추얼(의례)을 만들어보기. 자연의 거대한 순환과 결합하는 시간 갖기, 자기를 닦달하지 않기. 직진의 달음질에서 궤도 이탈하여 자꾸만 옆길로 새기. 마음챙김의 명상하기, 산책 등등. “아상(我相)에서 풀려나기 위한 숱한 시도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붓다가 되는 존재의 변형, 이로 인한 해탈과 대자유 얻기란 실은 매 순간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가능하며, 그 작은 선택의 순간이 바로 해탈의 순간”이다. 습관을 바꾸는 작은 실천, 자기에게 저항하는 자유, 자기에게 명령하는 결단의 순간들이 임계점을 넘을 때, 지금과 다른 리듬과 가치로 움직이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책의 난이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셸 푸코라는 철학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제1부 읽기가 약간의 도전이 되겠지만, 이 도전이 “자신의 경계를 훌쩍 넘게 할 것”이며, 이후 2부와 3부는 재미있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다 읽고 나면 읽기를 잘했다고 느낄 것이다. 즉 평소 철학을 접하지 않은 일반인들이라도 조금만 마음을 내면 큰 지장 없이 읽을 것이다. 이미 푸코를 접한 독자들이라면 제1부 푸코철학 총론이 푸코의 난해한 여러 개념들과 푸코 사유 전반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제1부는 통치성과 생명관리권력, 주체화, 권력-지식, 규율권력, 자기의 포에시스 등의 개념을 쉽고, 상세히 다루고 있어서 푸코사유의 전체 그림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푸코사유가 초기와 중기를 거쳐 후기 실존의 미학으로 건너간 궤적을 1부에서 쉽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독자들의 마음에 느낌표가 생기기를 희망하며 썼다.”
즉 푸코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푸코라는 매력적인 철학자의 놀라운 앎에 촉발되어 새로운 사유문법과 지평을 엿보게 될 것이며, 이미 푸코를 읽은 분들이라면 어렵고 난해한 푸코철학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천경 작가가 제시하는 새로운 세계 모습은 거대한 이데올로기나 거창한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소하지만, 실천하기는 힘든 개개인의 작은 변화들이 모일 때 가능하다. 그가 펼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에 동참해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