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표준적인 경제학 분석으로 경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합리성이라는 경제의 패러다임을 넘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 책은,
자본주의 경제 너머에 존재하는 다양한 경제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는 소비자 협동조합, 도시 농업, 시간은행, 대안화폐 등 대안 경제실천이 크게 성장했다. 금융자본주의가 흔들리던 시기에 대안 경제실천이 성장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고, 지속 가능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담은 이 책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이루어진 공동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 호주, 스페인, 그리스 등 경제위기의 여파를 겪은 주요 국가에서 대안 경제실천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고, 어떤 모습으로 삶 속에 지속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블록체인, 대안 금융 서비스, 공유화 운동 등 다양한 대안 경제실천의 동력과 요인을 분석하는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은 “경제는 문화다”라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표준적인 경제학 분석으로 경제를 바라보지 않는다. 모든 인간 행위는 비합리성의 세계에 퍼져 있고, 경제는 합리적 선택과 계량화할 수 있는 영역에 있다. 합리성이라는 경제의 패러다임을 넘어 인간이 어떤 행동을 왜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인간 행동을 이끄는 ‘문화’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생산·소비·교환이라는 일련의 경제활동은 경제 모형을 이루는 요소들을 넘어 삶의 사회적인 짜임과도 얽혀 있기 때문에, 경제실천을 포함한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면 문화를 다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경제학 분석이 아닌 문화적인 관점으로 대안 경제실천을 이해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다른’ 경제가 사회에서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은?
대안 경제실천의 목적은 이윤 축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다
보편적인 경제의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도 대안 경제실천이 지속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대안 경제실천 중 하나인 먹거리 협동조합은 이윤 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는 조합원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축적은 그들의 목적도, 결과도 아니다. 또 다른 사례인 공동체화폐도 이와 비슷하게 자본 순환을 지역에 머물게 하고, 그 방향을 이윤 축적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필요’에 맞춤으로써 자본이 순환하는 정도와 속도를 완화한다. 이는 계속해서 높아지는 생산성이 잉여 축적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더 많은 성장과 자원 사용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뒤집는 일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사유재산권, 임금노동, 교환과 이윤을 위한 생산 등 자본주의 생산의 기본적인 속성들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대안적’이다. 대안 경제실천이 사람들의 자발적인 필요와 욕구에 의해 지속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대표 저자인 마누엘 카스텔이 이 책의 서론에서 이야기하는 경제실천의 정의는 흥미롭다. “경제실천은 스스로의 존재방식과 사고방식, 관심사, 가치, 프로젝트에 맞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활동이다. 사람들의 실천 바깥의 추상적이고 어찌할 수 없는 경제논리나, 사람들이 따라야 할 형이상학적이고 몰역사적인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취약해지고 있는 체계의 대안으로 나타난 경제실천,
대안화폐와 느린 블록체인, 대안 금융 서비스, 느린 도시 운동…
“대안 경제실천은 경제구조의 ‘회복력’을 늘려가려는 시도다”
대안 경제실천의 특징 중 하나는 사회연대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중 대안화폐는 지역 공동체가 경제 자립성을 키우고, 금융 자율성을 강화하도록 도움으로써 지역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한다. 인력 대체를 목표로 하는 블록체인이 있다면, 이 책은 사람들 간의 협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블록체인의 특성에 주목한다. 미국의 소비자 대안 금융 서비스에 관련해서는, 기존의 금융 서비스에 대한 몇 가지 신화들이 현실과 맞지 않음을 주장한다. 이렇듯 이 책이 소개하는 대안 경제실천들은 모두 위기의 시대에 ‘회복력’을 증진하기 위한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대안 경제실천이 발달한 도시, 바르셀로나를 들여다보다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은 시장 규칙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이 책은 2008년부터 2010년 동안의 경제위기 당시 바르셀로나의 대안 경제실천들을 관찰했다. 관찰에 따라 이 책은 바르셀로나의 대안 경제실천을 두 가지 큰 범주로 나누었다. 한편에는 자원이 희소한 때에 저비용 혹은 무상으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얻음으로써 경제적 고통을 치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실천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연대와 상호 지지에 기반해 새로운 사회관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실천이 있다. 앞의 범주는 경제적 생존을 위한 전략이며, 후자는 사회 변화를 위한 프로젝트다. 두 실천은 동시에 일어나며 경제위기의 맥락 안에 서로 얽혀 있다. 바로 여기서 이 책은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이 이윤 추구와 소비자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는 시장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008년의 경제위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출생, 높은 실업률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이 책의 시선을 빌려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바라본다면
저출생, 높아지는 실업률, 치솟는 물가, 높은 부채지수 등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2008년의 금융위기와 마찬가지로 생태, 돌봄, 경제 문제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문제를 헤쳐 나가는 길이 기존의 질서를 복구하고 보완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와는 ‘다른’ 대안적 방법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규제받지 않는 세계 금융자본주의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껏 경제적 삶과 삶 자체를 이해하는 새로운 형태들은 경제정책의 청사진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아왔다. 그러나 느린 도시 운동이나 공유화 운동이 보여주듯 자본주의의 주변부에 있었던 새로운 문화들은 때로 사회운동으로, 결국은 새로운 권력관계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경제를 시행하는 새로운 제도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