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일상
“누구나 실수는 한다, 받아들이는 게 다를 뿐”
저자의 직장 선배 중 유난히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거래처에 중요한 내부 정보를 팩스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크게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평소 선배의 성정을 봤을 때 너무 큰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 나머지 퇴사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선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해 태연하게 업무를 보는 게 아닌가. 상사의 불편한 심기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실수는 잊히고 대단한 강철 멘탈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는 늘 생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자신의 평판을 걱정하기보다 그것을 인정하고 빨리 해결하는 게 낫다. 오직 자기 자신만이 실수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내가 부족한 것, 나의 단점과 약점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스스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때때로 지나친 사과는 상대를 거북하게 할 수 있고, 자신의 실수를 더 크게 각인시키기도 한다. “지금껏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얼룩이, ‘사과’라는 이름의 안경을 쓰면 또렷이 보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차라리 나와 맞지 않는 일은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을 발견하는 경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값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정확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선을 긋는 것도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다.
자타공인 ‘아싸’지만
내 두 팔이 닿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싶어
“누가 나를 싫어한다고, 나 때문에 화났다고 걱정해도 별수 없잖아? 결국 그건 내 상상이고, 정말로 그런지는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거야. 그냥 ‘타인은 픽션’이라고 생각하면 돼.” 저자는 남들에게 조금의 실수라도 보일까,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살피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극도로 싫었던 그는 작은 일에도 타인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고민을 쏟아내자, 친구에게서 멋진 답이 돌아왔다. 어차피 내 입장과 시선에서 판단하기 때문에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을 나는 알 수 없다”라고. 그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 그래서 타인은 (실제가 아닌) 픽션이다. 즉 허구나 신기루 같은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이 신경 쓰일 때는 이렇게 외쳐보자. 어차피 타인은 픽션!
인간관계가 힘들어 직장 생활을 포기한 저자는, 자타공인 ‘아싸’지만 밤이면 연락처를 뒤적이고 심지어 친구 사귀는 법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는 별난 취미를 가졌다. 사람들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가도, 집에 돌아와 기진맥진한 자신을 보며,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한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는 연약한 마음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차마 할머니에게 말하지 못하는 가족들의 배려심에, 아빠의 깊은 우울증을 답답해하다가도 연민이 비치는 엄마의 모습에, 진정한 행복과 삶의 본질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간다. 신세 지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서로에게 조금씩 폐를 끼치며, 마음의 무게를 나누며, 그렇게 서로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아주 예민하고 민감한 HSP 인간은 그렇게 삶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누구나 이런저런 상처를 안고 산다. 제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겉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수치심과 자존심 때문에 자꾸만 감추게 되는 게 상처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상처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누군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때도 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마음을 나눈다.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마음에 진실이 있다. 우리가 깊은 연을 맺을 수 있는 건 저마다 상처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