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터널’ 속 아이들이 간직한 별 하나
엄마도 함께 읽는 동화... 두 아이 키운 엄마가 건네는 나다움에 대한 이야기
‘2023 세종 교양도서 선정’ 작가의 담백한 울림과 일러스트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
누구나 마음속에 별 하나쯤은 담고 산다.
이제 막 경쟁의 터널로 들어가는 초등학생이건, 경쟁에 지친 어른이건 다르지 않다.
삶이 자신을 속이는 절망적 상황이라도 그 별빛 한 줌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살아진다.
그 크기와 모양은 달라도 모두의 마음속 어딘가에 남은 별은 삶을 이어가는 유일한 근거이자 거처이다.
〈바느질하는 고슴도치〉에는 그 희망의 별이 있다.
소소한 일상에서 깊은 애정과 서정을 길어 올린 네이버 블로거 ‘재발견생활’의 첫 동화가
도서출판 〈훨훨나비〉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첫 시집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가 숱한 경쟁으로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을 향한 힘찬 응원이라면,
이번 동화는 초등학교 공간에서 사회적 관계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겪을 상실감을 따뜻하게 품는 둥지이자 이야기이다.
학교생활을 시작한 초등학생이 느끼는 ‘경쟁’
국문학을 전공한 저자 재발견생활은 블로그를 통해 시와 일러스트를 게재해왔던 블로거이다.
저자는 간결한 문체로 어린 고슴도치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어간다.
넘어지고, 상처받는 어린 고슴도치의 일상은 학교생활을 막 시작한
초등학생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짧은 성장기적 우화를 통해 쓰러진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면서 희망의 별을 함께 찾아 나선다.
경쟁의 터널 속에 처음으로 진입한 아이들이 그 수렁의 쳇바퀴를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멀리, 더 빨리, 더 높이 치닫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자질의 무한한 가능성에 눈 뜨는 길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에게 권하는 동화책
이 책은 어린이만 읽는 동화가 아니다.
두 아이를 기른 엄마의 시선이 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살아있는 교육의 지혜와 통찰이 단순명료하게 담겨있다.
지금 이 순간, 어린이와 함께 절망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앓고 있는 엄마들,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를 돌보지 못했던 엄마들에게도 위로와 용기를 주는 동화이다.
따라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에게 적극 권장할만한 책이다.
2023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 의 작가 재발견생활의 첫 동화책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더러 있지만, 자신의 시 한편을 일러스트로 그리는 작가는 흔치 않다.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 그의 첫 시집 〈누가 뭐라든 당신 꽃을 피워 봐요〉가
2023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은 것은 이런 요인도 한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첫 시집에서 선보였던 시인의 감성적인 일러스트는 첫 동화집에서도 등장한다.
총 30장.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감성을 닮아 단순하다. 옆 장의 글을 보면서도 자주 시선이 머문다.
작가가 직접 그린 사랑스러운 고슴도치 캐릭터를 보면서 자기와 동일시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다.
이 일러스트를 보면서 자연스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떠올리는 어른들도 많을듯하다.
어린 고슴도치와 다르지 않았던 유년시절이 있었고, 지금의 나도 고슴도치를 닮지 않았는가.
이런 동질감이 이 책의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는 묘한 매력이다.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자기 집 책장에 자신의 아이들을 닮은,
현재의 자기를 닮은 고슴도치를 한 권 꽂아놓을 만한 가치가 있는 동화이다.
“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료한 대답
“당신 가슴에도 별이 있어요”
〈바느질하는 고슴도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잘할 수 있을까?”(책 7쪽)
이런 걱정은 어린이만 하는 건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고슴도치가 체육대회 날 아침에 일어나 걱정을 한 건
달리기를 못하는 자신을 볼품없게 느꼈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어른들도 항상 자신의 결핍을 안고 산다.
하지만 모든 어린이가, 모든 어른들이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는 건 아니다.
결국 이날 고슴도치도 꼴찌를 했다.
그렇다면 1위, 2위, 3위를 빼고 모든 이가 낙오자인가.
어린 고슴도치는 자신이 가진 수많은 자질 중 한 분야에 불과한 달리기에 소질이 없다는 게 밝혀졌을 뿐이다.
이 한가지 사실 때문에 평생 절망하면서 살아야할까.
이 동화가 시작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위안을 주는 이유는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올해도 꼴찌입니다.”(책 19쪽)
이 말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동질감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 동화는 시작부터 담고 있다.
체육대회에서 돌아오던 길, 족제비들의 놀림을 받은 고슴도치는 오도가도 못하고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몸을 웅크린다.
그 가시는 자기 방어의 상징이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모든 이들이 갖고 있는 이 가시로 때로는 반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아픔을 당하거나, 결핍을 느꼈을 때 즉자적으로 나타나는 어린이들의 반응은 울음이다.
고슴도치도 결국 울음을 터트린다. 그 울음의 강도와 세기가 강할수록 치유의 효과는 두드러진다.
이렇듯 감정 상태를 밖으로 드러낸다는 건, 한편으로 자신의 심적 상태를 객관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물에 빠졌었구나. 이 물이라도 마셔야겠어.”(책 31쪽)
고슴도치의 독백은 치유의 시작이었다.
감정을 몸 밖으로 밀어내자 비로소 자신이 오롯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투명한 살갗 속에서 반짝이는 가슴속의 별 하나.
다른 어린이들의 눈에 비친 ‘꼴찌’는 고슴도치를 규정하는 전체가 아니라 극히 일부분이었다.
오히려 그 빛이 고슴도치의 실체였고 희망이었다.
상처의 기억은 또 다른 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특효약이기도 하다.
다른 이의 아픔에 대한 동일시, 즉 공감의 힘 때문이다.
어린 고슴도치는 아픔을 겪었기에 큰고니의 아픔에 깊이 공감한다.
여기서 비롯된 연민의 감정은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진다.
고슴도치가 그러했듯이 치유의 시작은 큰고니만이 갖고 있는 별, 곧 자질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건 별이야.”(책 41쪽)
그 때 고슴도치는 자신의 아픔을 떠올리고 큰고니의 아픔을 내재화한다.
고슴도치는 자신을 방어했던, 남들이 보면 볼썽사납기도 했던 가시를 빼서
큰고니의 가슴 속에 깨진 별을 바느질로 깁기 시작한다.
자신이 아팠기 때문에 누구보다 아픔을 더 잘 알고, 그렇기에 치유의 힘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치유 수단으로 고슴도치가 획득한 이 바느질. 이 자질은 누가 말해준 게 아니다. 공감의 마음을 통해 저절로 획득되는 것이다.
이런 어린 고슴도치에게 달리기 1등이라는 성과를 강요하는 건 진정한 교육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기성세대의 틀로 짜인 경쟁에서 탈락한 것에 대해 함께 절망할 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아이들이 자신의 자질을 찾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누구나 이 가시를 갖고 있다.
“제 등에 돋아난
가시를 바라봅니다
넘어졌을 때 생긴 가시가 있어요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지요
울었을 때 생긴 가시가 있어요
웃는 기쁨을 알게 해 준
고마운 가시지요
이제는 알아요
가시가 별빛을 밝혀준다는 걸
어느날 가시가 돋아난다면
바로 내 안의 별빛을
환화게 밝힐 시간이라는 뜻이에요
여러분의 반짝거림은 무엇인가요
별을 꺼내 보아요”(지은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