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 공론장의 근간을 바로 세우다
지금 한국 공론장은 혼돈에 빠져 있다. 가짜뉴스, 유언비어, 비방, 선동 등으로 분열과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쌍방향 소통의 장으로 기대되었던 인터넷과 온라인 소통 수단은 알고리즘을 통한 유유상종과 양극화, 확증 편향 강화의 통로가 되고 있다. 나라와 언어가 다른 것이 아닌데도 소통이 어렵다. 공론장의 근간인 말이 이해와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오해와 갈등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림대 도헌학술원에서는 공론장의 핵심 키워드에 대한 이해의 기반을 넓히고 합리적 의사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키워드 한국 공론장’ 강연을 기획했다. 최근 공론장을 달군 주요 개념을 선정하고 전문가를 초빙하여 그것의 본래 의미와 역사적 변화, 한국 사회에서의 활용 방식 등을 따져 보며, 내실 있는 의사소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정의와 공정 1: 키워드 한국 공론장》은 바로 이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2023년 강연 주제인 ‘정의와 공정’과 그 대상이자 문제해결 당사자인 ‘젠더’, ‘노동’, ‘이주민’, ‘청년’에 대해 깊이 있게 논하면서 공론장의 초석을 다졌다.
5인의 전문가가 제시한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이 책의 저자 5인은 철학자, 사회학자, 문화인류학자로서 한국 사회의 화두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강의와 저술로 공론장을 이끄는 지식인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학자이자 교수로서 전공 분야에 대한 깊은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은 이러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공론장에서 흔히 쓰이는 잘못된 관념들을 짚어 내고, 이를 넘어설 해법을 제시한다.
목광수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는 ‘실력주의 공정’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며 롤스의 관점에서 민주적 절차 아래 자존감을 보장하고 합당한 차이를 인정할 것과 센의 관점에서 부정의를 제거하는 협력의 경험을 축적할 것을 제안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젠더’란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변화하는 관계임을 강조하며, 주디스 버틀러와 도나 해러웨이와 같이 남녀 이분법적 도식에서 벗어날 때에 젠더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근대 이후 ‘노동’이 인간 본연의 가치 실현 개념으로 전환되었음에도 노사관계는 각축적 측면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상호 인정과 존중의 태도로 노동 이슈의 상생적 공론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주’와 ‘다문화’의 의미와 역사를 살펴보고, 이들의 오남용에 함축되어 있는 이주민 혐오 문화를 경계한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청년’이란 개념은 사람, 사물, 제도, 미디어 등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하나의 배치라고 주장하며, 청년을 하나로 묶어 문제화, 타자화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한국 공론장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깊은 학문적 통찰이 담긴 이 책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공유하고 건설적 논의를 하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