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로 세계의 모든 호러영화를 정리한 책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호러영화의 모든 것 《호러영화사》”
고전 영화, 그 가운데 고전 호러영화를 보는 것은 어렵다. 시대가 다르고, 영상 문법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호러영화사》는 고전 호러영화를 모두 확인하고 알릴만한 가치가 있거나 꼭 언급해야 하는 고전 호러영화 200편 이상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비평으로부터 천대받아 왔던 호러영화만큼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낸 영화 장르는 없다. 심지어 초기 SF 영화의 대다수는 호러영화기도 했다. SF 역시 상상력을 표현하는 데는 호러영화에 비해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호러영화사》는 호러영화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정리한 책이다!
오늘날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호러영화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이 책에서 QR 코드로 영화 링크를 제공하는 것처럼 검색을 통해 고전기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접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다만, 영화의 시작은 1895년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영화 가운데 오늘날과 가장 가까운 영화를 선택할지라도 60년이 넘는 세월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영화 관객에게는 좁히기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시간이다. “호러영화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았건 혹은 영화 역사의 창고 속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남겨져 있건 이들 영화를 최선을 다해 찾아본 다음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이로써 “호러영화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호러영화가 생겨나고 변화해 간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역사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벌어진 특별한 사건들을 특정한 위치에 고정하는 행위다. 역사는 이 특별한 사건들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준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나 그늘 속에 있었던 호러영화의 역사를 파악하고, 오늘날 만들어지는 영화를 보다 보면, 이제까지와는 조금 더 다른 것이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영화 보기의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호러영화사”를 쓰기 위해 1959년까지 등장한 영화 가운데 가능한 모든 호러영화를 보려고 노력했으나 이는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영화의 온전한 목록을 만들기조차 불가능하다. 대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영화를 찾아보았고, 그 가운데 알릴만한 가치가 있거나 언급해야 하는 영화 200여 편을 개별적으로 다루었다.
“호러영화사”는 3권으로 계획된 책이다. 보고 정리해야 할 영화가 수천 편에 이른다. 총 3권 2,0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다. 다른 나라에도 특별한 시대의 호러영화를 다룬 책들은 있어도 호러영화 전체를 이만한 분량으로 정리한 책은 없다.
영화의 역사는 이야기와 이미지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상상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 장르 가운데 상상력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영화는 단연 호러영화다. 호러영화의 역사를 읽어가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변해왔고, 어떤 즐거움을 찾으려 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호러(Horror)는 자극적인 즐거움의 다른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역사와 이를 통해 떠올릴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 책 “호러영화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영화 장르로서의 호러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호러영화사』는 서문을 제외하면 “호러 장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로 시작해 “왜 호러영화를 보는가?”로 끝을 맺도록 구성했다. 이는 호러 장르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혀보려는 아주 기초적인 시도다. “호러 장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다음 문장을 시작으로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분량은 7,948자에 원고지 39매 분량이다.
“horror, horror, horror” - 맥더프(『맥베스』 2막 3장)
위에 인용한 말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덩컨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맥더프의 대사다. 맥더프는 맥베스와 귀족 레녹스가 함께 있는 곳으로 다가가며 이 대사를 말한다. 셰익스피어는 절망에 휩싸인 맥더프의 지독한 감정을 어떻게 상상하며 이 대사를 썼을까? 알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은 한없이 복잡한 데, 여기에 혼란이 끼어들면 해석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맥베스』를 읽는 우리 또한 이 장면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인다. ‘호러’란 어떤 방식으로 규정된 하나의 심리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맥더프는 이 세 번의 외침에 각기 다른 감정을 실었을 수도 있다. horror(공포), horror(참사), horror(증오)는 따라서 ‘너무나도 두렵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으니 이 일을 벌인 자에 대한 지독한 증오가 끓어오른다’로 읽힐 수도 있다. 이들은 모두 ‘호러’라는 단어에 포함되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포’영화가 아닌 ‘호러’영화를 다루려고 한다.
그런 다음 “왜 호러영화를 보는가?” 역시 호러 장르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노력하는 내용이다. 분량은 7,428자 원고지 34매 분량이다.
호러영화는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이미 고딕 문학 같은 확고한 전통이 있었고, 에드거 앨런 포처럼 공포문학의 위대한 선구자가 무시무시한 세계를 소설과 시로 묘사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아서 매켄과 윌리엄 호프 호지슨처럼 초월적인 공포를 묘사하는 작가에 이어 코즈믹 호러의 선구자 H. P. 러브크래프트 역시 곧바로 도착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에 공포문학을 읽던 독자는 이미 호러 장르를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러 장르는 언제까지나 저급한 장르로 취급됐다. 그저 말초적인 자극을 줄 뿐이며, 천박하고 끔찍하며 우스꽝스럽다는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기만 하다. 알프레드 히치콕마저도 〈싸이코〉를 공개하자 다수의 평론가가 엄청난 저주를 쏟아내기도 했다. 심지어 『고어 영화: 피의 미학』이라는 책의 ‘옮긴이의 말’에서는 한 학생이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데에는 많은 변명이 필요하다”는 리포트를 쓰기도 했다고 말한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장르를 규정하려는 생각은 만용이므로 이 책에서는 호러영화/장르를 규명하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다. 대신 늘 천대받고 무시당해 왔던 이 장르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히고자 했다. 『호러영화사』는 서문(들어가는 글)에서 이 책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호러영화사”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았건 혹은 영화 역사의 창고 속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남겨져 있건 이들 영화를 최선을 다해 찾아본 다음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이로써 “호러영화사”를 읽는 것만으로도 호러영화의 여명기를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역사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벌어진 특별한 사건들을 특정한 위치에 고정하는 행위다. 역사는 이 특별한 사건들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준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나 그늘 속에 있었던 호러영화의 역사를 파악하고, 오늘날 만들어지는 영화를 보다 보면, 이제까지와는 조금 더 다른 것이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영화 보기의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화는 인간의 마음을 담는 동시에 역사를 담는다. 김성수 감독은 〈서울의 봄〉 인터뷰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역사의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가서 역사를 찾아보는 것이 기쁨이고 보람”이라고 밝혔다. 한스 위르겐 괴르츠는 『역사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의 맛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지적 능력이나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역사에 대해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해는 앎에서 나온다. 깊은 이해는 앎을 깊이 숙고하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이해로부터 풍부한 즐거움 또한 따라 나온다. 이건 덤이지만, 실로 충만한 덤이다. 그러니 『호러영화사』는 이 충만한 덤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보려는 마음이 하나의 물건 즉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이다. 영화 보기의 즐거움은 단지 영상만이 아닌 주변에 흩어진 다양한 역사의 편린을 정리하고 흡수했을 때 더 커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