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됐지만 새로운 친구” 베트남
《오늘의 베트남》은 한국의 3대 무역국으로 도약한 ‘베트남’의 진면목을 역사부터 경제와 문화까지 6가지 키워드로 담아냈다. 유교 전통이 살아 있고 근면한 베트남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한국인과 가장 닮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저자 안경환 교수는 베트남과 수교를 맺기 전부터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서 한결 같이 가교 역할을 해온 베트남통이다. 그가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새 베트남 거리로 걸어들어가 우리처럼 정 넘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① 베트남을 읽는 키워드 "5천 년을 지켜낸 자주의식과 자존심"
- 중국, 몽골, 프랑스, 미국의 침입을 막아낸 저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저자가 베트남 시장개척단으로 들어갔을 때 현지에서 들었던 인상적인 말이 있다. “음수사원(飮水思源) 하라.” 물을 마실 때 물이 나온 곳(水源)을 생각하라는 것, 즉 조상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용의 자손”이라 자칭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기원 전 3천여 년 전 훙브엉 왕조의 난생신화를 굳게 믿는다. 훙브엉의 기일인 음력 3월 10일은 베트남의 공휴일이며 여전히 많은 이들이 훙브엉의 묘가 있다는 웅이어린산(하노이의 서북쪽 100km)에 찾아간다.
또한 베트남은 외세 침입을 막아낸 역사적 영웅들을 일상에서 기린다. 서기 40년 중국을 상대로 베트남 최초의 독립운동을 일으킨 쯩짝, 쯩니 두 자매(쯩 자매)는 베트남의 구정(뗏) 이후 매해 열리는 하이바쯩축제에서 되새겨진다. 이런 자주의식이 바탕이 된 덕분에 1049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베트남은 중국과 상호대등하다는 인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는 세계 최강 몽골제국의 세 차례 침략을 막아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한편 강력한 자주의식은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존심이 발동되지 않도록 말과 행동에 유의해야 한다.
그럼에도 1970년대까지 맞서 싸운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과 선린관계를 맺는 것은 “과거의 문을 닫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실용적인 사고방식 덕분이다. 이는 양면적이다. 언제라도 문을 열 수도 있다.
② 베트남을 읽는 키워드 ‘동남아시아의 유교 국가’
- 동남아시아의 유일한 유교사회, 실용성을 갖추다
베트남은 천 년이 넘게 중국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는 북속 기간을 거쳤다. 그런 이유로 동남아시아의 여느 국가들과 달리 유교적 가치를 근간으로 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베트남의 전통혼례는 한국과 비슷한데 씹으면 빨간 물이 들며 깊은 설화가 숨어 있는 ‘쩌우까우’와 차(茶)를 선물한다. 차는 씨를 한 번 심고 나면 옮겨질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한 약속을 뜻한다.
베트남에는 우리의 《심청전》과 비슷하게 ‘효’를 구현한 문학 걸작 《쭈옌끼에우》가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억울한 옥살이를 면하기 위해 연인이 아닌 다른 혼처로 시집가게 된 끼에우는 어려움 속에 공덕을 쌓은 끝에 결국 최초의 연인과 다시 맺어짐으로써 유교의 도덕을 뛰어넘는다. 《쭈옌끼에우》는 지금도 젊은 층에서 책의 아무 곳을 펴서 그날의 운수 점을 치는데 활용할 정도로 여전히 생활 속에 살아 있다.
베트남의 실용주의는 여성들의 적극적인 사회생활과 ‘이름을 바꾸는 문화’에서도 드러난다. 전통적인 유교에 따르면 부모가 물려준 성과 이름은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지만, 베트남인들이 성씨를 바꾸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 결과 셋에 한 명은 ‘응우옌’ 씨라는 말도 있다.
③ 베트남을 읽는 키워드 ‘호찌민과 사회주의국가의 탄생’
- ‘호 큰아버지’로 불리는 국부 호찌민은 어떤 존재인가?
저자가 베트남어를 배우던 대학생 시절, 호찌민이란 인물에 대한 첫인상은 단순히 ‘공산주의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유네스코가 1990년 호찌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를 “베트남 민족 해방의 영웅이자 세계적인 문화인”으로 공인했을 정도로 호찌민은 이념을 뛰어넘는 인물이었다. 베트남에서는 타인을 부를 때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상식이지만, 유독 호찌민만큼은 ‘호 큰아버지’라는 의미의 ‘박 호’라고 성으로 지칭한다. 이른바 ‘직업 혁명가’인 호찌민이 평생 베트남의 독립과 건국을 위해 힘쓴 데 대한 애정과 존경의 표현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과 보응우옌잡 장군 두 리더의 탁월한 지도력과 그 아래 일치단결한 국민들로 인해 독립과 건국을 달성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 정신은 국민 축제처럼 치러지는 선거로 이어진다. 일당이긴 하지만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을 까다롭게 검증하는 후보 추천 제도 등 ‘5無’의 선거제도는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물론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다당제는 베트남이 개척해야 할 미래다.
④ 베트남을 읽는 키워드 ‘도이머이와 성장 잠재력’
- 베트남판 개혁개방 그리고 투자 유의점
베트남은 1945년부터 30년간 이어진 통일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된 이후 오랜 세월 경제난을 겪어야 했다.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베트남 정부는 1986년에 베트남판 개혁개방 도이머이정책을 채택한다. ‘바꾼다’는 의미의 ‘도이’와 ‘새로운, 새롭게’라는 의미의 ‘머이’가 합쳐진 이 용어는 시장경제체제로의 진입을 의미했다. 도이머이정책은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하면서 베트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한편으로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등 그림자 또한 갖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은 탈중국 공급망으로서의 국제적 지위가 격상되고, 젊은 인구가 풍부해 잠재력이 큰 나라다. 저자는 풍부한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에서 사업을 벌이거나 투자할 때 주의할 점도 제시한다.
⑤ 베트남을 읽는 키워드 ‘쌀의 나라’
- 음력설 뗏,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 퍼, 전통의상 아오자이 등 농경문화가 남긴 생활문화
전체 인구의 62%가 농촌에 사는 베트남은 여전히 농경 풍습이 도시에서도 지켜지는 편이다. 가장 큰 명절인 음력 설 뗏에는 가장과 띠와 사주가 맞는 남성을 초대해 한 해의 복을 비는 ‘쏭덧’을 비롯해, 부엌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폭죽을 터뜨리며 잡귀를 몰아낸다.
또한 쌀의 민족답게 쌀로 만든 다양한 국수를 만들어 먹는데,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퍼(Phở)다. 독립전쟁 당시 군인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항전 음식의 대명사이자, 지역별로 맛과 재료를 달리하며 지역적 개성을 드러내고, 오늘날에는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밖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독특한 차(茶) 문화, 베트남의 상징인 아오자이와 모자 ‘논’의 10가지 쓰임새, 선물 문화 등도 에피소드와 함께 소개한다.
⑥ 베트남을 읽는 키워드 ‘한국과 닮은 나라’
- 베트남의 미래와 양국의 미래를 위해 넘어야 할 과제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수립한 지도 30여 년이 지났지만 사실 두 나라는 고려 시대부터 교류를 이어온 오래된 이웃나라다. 저자는 네 가지 측면에서 사촌 관계를 정의하다. 서로 닮은 점이 많은 두 나라 간에는 그간의 세월만큼 풀어야 할 얽혀 있는 실타래도 있다. 미래를 향한 저자의 제안에 귀 기울여보자.
소소한 재미의 읽을거리
‘베트남 속으로 한 걸음 더’, ‘여행자를 위한 정보’
이 책은 각 장마다 쉬어가는 코너를 배치해 소소한 읽을거리와 실용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호찌민이 정말로 《목민심서》를 즐겨 읽었는지, 독립운동에 앞장선 베트남의 토착 종교 까오다이교는 무엇인지, 베트남 내의 이슬람 신도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왜 베트남 사람들이 박항서 감독의 축구 국가대표팀에 열광했는지 등 본문에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또한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등 유익한 상식을 제공한다. 베트남통 저자가 엄선한 여행지 리스트를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