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마음 공부’의 절묘한 조합!
시로 듣는 동명 스님의 안심법문!
동명 스님은 시 읽어주는 스님으로 유명하다. 불광사 법회 때도 종종 시를 읽어준다. 지난 3월 법회에서는 막 벙글고 있는 석촌호수의 산수유 소식과 함께 신달자 시인의 〈개나리꽃 핀다〉를 낭송했다.
바람 부는 3월 / 진회색 개나리 가지들 속에서 / 노오란 머리 비집고 나오는 / 신생아들 /
/ 순금의 애기부처들이 / 지난해 못다 준 말씀들 / 세상에 와르르 쏟아내고 계시다 (…)
3월 설법으로 / 개나리꽃 핀다
최소한의 양분만으로 추운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개나리를 순금의 애기부처로 표현한 시와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는 봄꽃처럼 우리 수행자들도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꾸준히 수행하자’는 스님의 설법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다.
시와 불교는 완전히 동떨어진 두 세상인 줄 알았는데,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 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부처님 가르침을 찾을 수 있다. 《가만히 마음을 쓰다듬은》은 바로 이렇게, 시와 ‘마음 공부’의 절묘한 조합을 맛깔나게 차려낸 선물 같은 책이다. 시만 읽었을 때와, 스님의 감상평까지 읽고 나서의 느낌이 묘하게 다르다. 감춰져 있던 한 세상이 환히 열린다. 그렇게 가만가만, 살금살금 마음을 쓰다듬어준다.
시를 읽는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삶의 방향을 나에게서 찾는 것!
동명 스님은 이십 대 초반에 등단하자마자 시집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시집도 꾸준히 낸, 그야말로 ‘잘나가는’ 시인이었다. 하지만 내면은 ‘시 잘 쓰고 싶은 욕심,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는 문학적 욕망’으로 괴로운 나날이었다. 시인으로 산 20년이 괴로움이었다는 속내를 출가 직전 인터뷰에서 밝힌 것이다.
출가자로 10여 년 이상 살아온 지금은 어떨까?
스님은 ‘생활밴드’에 올릴 시를 고르고, 읽고, 함께 나눌 이야기를 쓰면서 몇 가지 원칙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가장 큰 다짐은 “시를 살기로” 한 것이다. 시를 잘 쓰겠다는 것이 세속의 욕망이라면, 시를 살겠다는 것은 일상에 담겨 있는 시를 ‘발견’하자는 수행자적 자세라 볼 수 있다. 이 원칙을 실행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스님은 매사에 여유를 가질 것, 수행에 도움 되는 일만 할 것, 솔직할 것을 꼽는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체면치레로 살지 않고, 일시적인 이익이 된다 하여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고, 매사에 시를 느끼면서, 여유를 갖고, 수행에 도움 되는 일만 하면서, 솔직하게 살겠습니다. 그것이 제가 시를 사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다짐을 읽고 나면 함께 읽는 모든 시가 곧 수행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말하는 수행은 억지로 하는, 힘들여 하는 그런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차리는 것부터 수행’이라고 스님은 알려준다.
지금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나 있는지 두려워하는지, 눅눅한지 보송한지 알아차리고 있는가?
시를 읽는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늘 밖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방향을 나에게서 찾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것이 그대로 ‘수행’이 되는 것이다. 다른 어떤 시집과도 다른 이 책만의 매력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