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리말 여행
ㆍ고라리 : 어리석고 고집 센 시골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ㆍ경아리 : 예전에, 서울 사람을 약고 간사하다고 하여 비속하게 이르던 말.
예) 마음만 먹으면 똑똑하다는 경아리 몇 놈쯤은 단숨에 납청장으로 만드는 재간은 있소.
이 책의 2일차 여행에서 소개하는 ‘고라리’와 ‘경아리’는 보기 드문 신기한 우리말이기도 하거니와, 어감이 주는 재미가 있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말들을 단편적으로 나열,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아리’의 예문으로 제시된 문장에 나오는 ‘납청장(納淸場)’의 뜻(되게 얻어맞거나 눌려서 납작해진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안북도 정주의 납청시장에서 만드는 국수는 잘 쳐서 질기다는 데서 유래한다.)도 소개하고, 나아가 납청장보다 더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인 ‘뇟보’(천하고 더러운 사람), ‘바사기’(사물에 어두워 아는 것이 없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놀림 조로 이르는 말)까지 알려 준다.
이 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사기’가 ‘팔삭(八朔)+이’가 변해서 된 표현이며, 그 자체로 나쁜 뜻이 아닌 ‘팔삭’(음력 팔월 초하룻날)이라는 말과, 이것이 부정적으로 변한 ‘팔삭둥이’(① 제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여덟 달 만에 태어난 아이. ②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까지 알려 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6가지(고라리, 경아리, 납청장, 뇟보, 바사기, 팔삭둥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그것도 국어사전의 정통한 풀이와 예문을 곁들여 가면서 말이다.
한편, 이 책은 상위 개념의 단어에서 하위 개념의 단어로 설명이 이어지면서 한 가지 말에서 파생된 다양한 말을 펼쳐 보여 주기도 한다. 예컨대 저자는 ‘쌀’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해서, 쌀이 아닌 곡식에 ‘쌀’을 붙이기도 하는 ‘보리쌀’, ‘좁쌀’이라는 말을 소개하고, 쌀의 또 다른 표현으로 ‘멥쌀’, ‘찹쌀’, ‘입쌀’이 있고(왜 ‘쌀’이 붙는 단어들은 대부분 앞에 ‘ㅂ’이 붙는지에 대한 설명도 곁들인다), 종류별 명칭으로는 ‘백미’, ‘현미’, ‘흑미’ 등이 있음을 알려 준다[‘희게 쓿은 멥쌀’이라는 백미의 뜻풀이에서 ‘쓿다’라는 말의 뜻과 함께 이 말이 지금은 ‘도정(搗精)’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음도 설명한다]. 설명은 쌀의 모태가 되는 ‘벼’와 그 껍질인 ‘겨’로 이어지고, 겨의 종류인 ‘왕겨’와 ‘쌀겨’까지 설명한 후[‘쌀겨’를 한자로 ‘미강(米糠)’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짜낸 기름이 ‘미강유(米糠油)’임도 설명한다] 쌀을 가지고 만든 ‘미음’, ‘죽’, ‘암죽’에 이른다. 마지막으로는 ‘죽’과 관련한 “죽을 쑤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도 밥도 안 되다”, “죽 떠먹은 자리”, “죽 쑤어 개 준다” 등의 관련 속담, 관용구까지 설명해 주니, 쌀에서 죽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다양한 단어와 표현들을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국어사전 일일공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말 여행을 이어 나간다. 총 77일간의 여행이지만 77개의 말이 아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백 개의 단어와 표현, 관련 속담과 관용구들이 국어사전의 뜻과 용례, 어원과 함께 소개된다.
우리말 공부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생활 속에서 할 법한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되어 그에 대한 우리말을 찾아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해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해녀’에 해당하는 ‘잠녀(潛女)’와 ‘보자기’를 소개하고, ‘남자 보자기’라는 뜻이 있는 ‘해인(海人)’을 찾아내고, 보자기의 방언 ‘머구리’까지 알려 준다. 또한 ‘외출할 때 입는 옷과 집에서 입는 옷은 각각 뭐라고 할까?’에서 시작하여 예전에 주로 사용하던 ‘난벌’, ‘든벌’, ‘난든벌’을 찾아내 소개하고, 요즘에는 ‘벌’을 ‘세트’가 대체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난’과 ‘든’이 들어가는 표현으로 ‘난사람’, ‘든손’, ‘난침모’, ‘든침모’, ‘난든집’을 알려 주며, 마침내는 ‘난거지든부자’(겉보기에는 거지꼴로 가난하여 보이나 실상은 집안 살림이 넉넉하여 부자인 사람)와 ‘난부자든거지’(겉보기에는 돈 있는 부자처럼 보이나 실 제로는 집안 살림이 거지와 다름없이 가난한 사람)라는 참으로 신기한 표현까지 소개한다.
‘한 살 된 아이는 돌쟁이라고 하는데, 한 살 된 동물은 뭐라고 할까?’라는 의문은 ‘하릅’(나이가 한 살 된 소, 말, 개 따위를 이르는 말)과 ‘한습’(말이나 소의 한 살)으로 이어지고, 이로부터 하릅강아지, 하릅망아지, 하릅비둘기가 유래했음을 알려 주고, ‘하릅강아지’와 ‘하룻강아지’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동물의 새끼를 부를 때 소는 송아지, 말은 망아지, 닭은 병아리 등으로 부르는데, 왜 고양이는 그런 명칭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이끄는 설명도 흥미롭다. 예전에는 고양이를 가리키는 말 ‘괴’가 있었고 이 말에 새끼를 가리키는 말 ‘앙이’가 붙어 ‘고양이’가 되었다. 그러나 ‘고양이’가 새끼뿐 아니라 이 개체를 대체하는 표현이 되면서 ‘괴’는 사라졌다. 그러나 ‘괴’라는 말의 흔적은 일부 표현에 남아 있는데, “괴 다리에 기름 바르듯”(일을 분명하고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고 슬그머니 얼버무려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괴 딸 아비”(고양이 딸의 아비라는 뜻으로, 그 내력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괴발개발”(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으로, 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이르는 말) 등의 속담이나 관용구가 이를 설명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말 인문학
‘진간장’은 국어사전에 “① 오래 묵어서 아주 진하게 된 간장. ② 기름을 뺀 콩을 쪄서 볶은 밀가루와 섞고, 곰팡이 씨를 뿌려 메주 를 띄운 후, 소금물을 부어 6개월가량 발효시켜 짜낸 간장.”이라고 풀이되어 있는데, 오늘날 시장에 가 보면 간장 가운데 진간장이 가장 싸다. 그러니 오래 묵어 진하게 된 간장도, 6개월가량 발효시킨 간장도 아닐 듯하다. 이런 의문에서 ‘간장’에 대한 우리말 인문학은 시작된다.
저자는 우선 간장의 종류부터 살펴, 양조간장, 화학간장, 혼합간장, 개량간장의 뜻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담가 먹었던 방식, 즉 메주를 발효시켜 얻은 간장이 ‘양조간장’임을 설명한다. 그러나 오늘날 시중에서 ‘양조간장’이라는 명칭으로 파는 상품 대부분은 ‘메주를 발효시켜 얻은 간장’이 아니라, ‘기름을 뺀 콩과 밀가루로 만든 것’으로, 이마저도 양조(釀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화학간장에 양조간장을 일정 비율로 섞은 ‘혼합간장’을 양조간장이라 표기하여 판매함을 알려 준다. 설명은 진짜 양조간장, 즉 ‘조선간장’으로 옮겨 가, 앞서 살펴본 양조간장과 진간장 등은 모두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일본식 간장 즉 ‘왜(倭)간장’이었고,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간장은 ‘조선간장’이었음을 알게 된다. ‘간장’이라는 말에 대한 공부가 ‘간장의 인문학’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인간은 말로 드러나고, 인간이 만든 문명은 글로 드러난다.”고 하면서, “물이 귀해지면서 ‘돈을 물 쓰듯 쓰는 시대’가 지나갔듯, 글을 마구 쓰는 시대도 곧 지나갈 것이다. 마구 써 대는 글은 사람 대신 AI라는 기계가 대신할 테니 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진짜 글을 쓰는 사람만이 남을 텐데, “진짜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긴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이 책이 “자신의 사람됨을 솔직히 표현하려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이들에게 작은 보탬”이 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