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인간이 표출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짓의 향연!
해부학은 인간의 상처가 시작되는 통증유발점을 찾는 여정!
해부학과 스포츠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해부학의 개념을 정립한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는 한때 콜로세움에서 주치의로 일하며 치명상을 입은 검투사를 치료했다. 당시 로마제국의 검투사는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싸웠고,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와의 격투도 피할 수 없었기에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았다. 갈레노스는 검투사의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피부와 근육을 꿰매는 수술을 집도했는데, 이러한 기록은 현대 스포츠의학의 기원을 이룬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선수들이 벌거벗은 채로 경기에 출전했다. 체조를 뜻하는 gymnastics는 ‘벌거숭이’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ymnós에서 유래했다. 해부학의 탐구대상도 벌거벗은 인간의 몸이다. 그렇게 올림픽과 해부학은 인간 본연의 몸이라는 근원적인 공통분모 위에서 진화해 왔다. 올림픽이 인간이 표출하는 가장 이상적인 몸짓의 향연이라면, 해부학은 인간의 상처가 시작되는 통증유발점을 찾는 여정이다.
알리의 뇌,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순간 모든 게 끝났다!
타이슨의 핵주먹, 배고픈 전사의 리썰웨폰!
이 책은 1964년 로마 올림픽 복싱 종목에 미국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건 무하마드 알리와 복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15쪽). 폭력과 스포츠를 나누는 경계인 ‘사각(四角)의 링’이 복서들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사각(死角)의 링’이 된 사연(19쪽)을 ‘펀치 드렁크’라 불리는 만성외상성뇌병증(chronic traumatic encephalopathy, 이하 ‘CTE’)을 통해 의학적으로 풀어낸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프로복서 알리가 노후에 파킨슨병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하게 된 사연과 함께 CTE가 복서뿐 아니라 미식축구선수들 사이에서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까닭을 규명한다(22쪽). 특히 국제복싱연맹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헤드기어 착용을 의무화했다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다시 헤드기어를 벗도록 규정을 바꾼 석연치 않은 조치를 의학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23쪽). 아울러 마이크 타이슨의 핵주먹을 통해 해부학에서 ‘복서의 날개뼈’라 불리는 앞톱니근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타격의 메커니즘도 함께 소개한다(29쪽).
호날두의 종아리근육과 무회전킥, 조던의 무릎연골과 슬램덩크 등
스포츠의학의 원리를 100여 컷의 해부도와 이미지로 풀어내다
축구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회전킥(스핀킥)과 무회전킥의 원리를 다룬 대목에서는 ‘마그누스 효과’ 및 ‘카르만 소용돌이’ 등 물리학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100쪽, 103쪽). 특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무회전킥이 어떻게 종아리근육에서 비롯되는지를 해부도를 통해 명쾌하게 풀어낸다. 종아리근육 중에서 긴발가락폄근이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4개의 발가락에 관여함으로써 무회전킥이 종아리근육에서 비롯하는 원리가 한눈에 읽힌다(106쪽). 이처럼 책에 수록된 100여 컷의 해부도와 이미지는 각 종목마다 다룬 신체 부위에 대한 의학적 이해를 돕는다.
코트 위를 영원히 평정할 것 같았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지던 순간 해부학자인 저자는 조던의 무릎에 찬 물에서 세월의 흔적을 읽는다. 무릎에 물이 찬다는 것은 무릎 주변을 덮고 있는 활막에서 나오는 끈적한 액체인 활액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는 증상을 의미한다. 무릎에 외상이 나타나면 관절에 염증이 생기고 이때 무릎의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활액의 분비가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무릎 주변이 심하게 붓게 되는 것이다(135쪽). 아울러 저자는 조던의 신체를 통해 전성기 시절 ‘에어(air)’라는 닉네임을 얻을 만큼 출중했던 점프력의 비결을 규명한다(133쪽).
인간의 뼈와 근육은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의 원천이 되었나?
저자는 속근과 지근으로 나뉘는 인간의 근육이 올림픽 종목에 따라 발달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조목조목 밝혀낸다.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이 걸린 육상의 경우 단거리/중거리/장거리 등 세부종목에 따라 근육의 발달 정도에 차이가 있다. 속근은 수축 속도가 빠른 근육으로 순간적으로 힘을 낼 때 사용되는 만큼 100미터와 200미터 등 단거리선수일수록 발달해 있다. 반면 지근은 수축 속도가 느린 근육이므로, 지속적으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만큼 장거리와 마라톤 선수일수록 발달해 있다(168쪽).
이를테면 아주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발휘해 엄청난 무게의 바벨을 들어야 하는 역도는 달리기에 비유하면 100미터보다도 짧은 최단거리 경주에 해당한다. 역도선수들에게서 순발력에 유리한 속근이 강조되는 이유다(203쪽).
저자는 속근과 지근의 속성상 우리 몸의 근육이 순발력과 지구력을 동시에 갖추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을 설명한다. 이에 대해 속근과 지근이 골고루 발달해야 하는 중거리(800미터, 1500미터)가 육상에서 가장 어려운 종목으로 꼽히는 이유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171쪽).
기술도핑 논란, 스테로이드 오남용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다
이 책은 최근 스포츠계에 불거진 기술도핑 및 스테로이드 오남용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다룬다. 저자는 스포츠과학의 진화와 성취는 눈이 부실만큼 경이롭지만, 기록 갱신에 함몰된 과학은 공허하다고 일갈한다. 기록의 주인공이 인간인지 과학인지 모호해질수록 스포츠는 길을 잃고 만다는 얘기다.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독일의 파울 비더만이 입은 전신수영복은 기술도핑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놓았다. 그는 스판덱스 소재의 전신수영복을 입고 마이클 펠프스와 이언 소프의 세계신기록을 가라치웠다. 전신수영복이 기록 단축에 효과가 크다는 것이 입증되자 많은 선수들이 전신수영복을 입고 국제대회에 출전해 한 해에만 수십 개의 세계신기록을 쏟아냈다. 저자는 물의 마찰저항을 줄이는 전신수영복의 원리를 통해 수영복 제조사의 ‘기술’이 선수들의 ‘기량’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규명한다(344쪽).
마라토너를 괴롭히는 족저근막염이 2시간대 벽을 깨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임을 다루는 대목도 흥미롭다. 케냐의 마라톤 영웅 킵초게는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나이키가 특수제작한 러닝화를 신고 세계기록 갱신에 나섰다. 운동화 무게를 100그램 줄이면 57초를 단축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운동화 밑창에 탄소섬유 4장을 부착해 제작한 런닝화를 신은 킵초게는 1시간59분40.2초만에 완주했다. 당시 킵초게 곁에는 5명의 페이스메이커가 V자 형태로 달리며 맞바람의 공기저항마저 줄여줬다. 하지만 세계육상연맹은 기술도핑 등을 이유로 킵초게의 기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79쪽).
아울러 이 책은 사이클이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으로 올림픽에서 퇴출위기를 겪어야 했던 사연(230쪽) 및 체지방 감소를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해 REDs(Relative Energy Deficiency in Sports) 증후군에 시달리는 어린 체조선수들의 인권 문제(197쪽) 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스포츠 이면의 불편한 진실을 소상히 파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