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시간 청소년 시선 세 번째 작품으로 이병철 시인의 『해저 연애 통신』이 출간되었다. 시인으로, 문학평론가로 두루 활동하며 산문집 『시간강사입니다 배민 합니다』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이병철 시인의 첫 청소년 시집이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가방 공장 사업 부도 후 부재했던 아버지의 그늘 아래 애써 태연한 체 “그저 안쓰러운 할리우드 액션”(「할리우드 액션」)을 하며 자라야 했던 시인의 유년 시절이 오롯이 담겨 있다.
여름 방학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강가에서 낚시를 배웠던 어린아이는 학교를 결석하고 혼자 낚시터에 가는 쓸쓸한 청소년이 되었다. “우리 집이 잘살았을 때 / 그러니까 집도 우리 집이고 아빠 차도 있고 / 엄마가 일 안 나가던 때 / 할아버지 할머니가 박스 줍기 안 하던 때”(「혼자 하는 캐치볼」)는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고 소년은 “웃음이 웃음이 아니었음을 눈치”(「빨간 모자」)채 버린 “수능 시험 안 보는 공고생”(「할리우드 액션」)이 되었다. 그렇게 야구공으로 원망스러운 하늘을 부수어 보고, 인문계 학생들이 공부할 때 캄캄한 지하 실습실에서 납땜을 하고, 철가방 들고 분식집 배달 오토바이를 몰고, 고백하지 못하는 짝사랑을 열병처럼 앓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어느덧 어른이 된 시인은 “나에게도 추억이라는 게 이제 조금 생기는데 / 추억 속 사람들은 왜 하나둘씩 떠나갈까요”(「흑염소와 민박 할아버지」)라며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되짚을 줄 알게 되었다.
“낚시만 남을 것이다”(「나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 1」)라는 제목처럼, 시인은 아버지가 상속해 준 최고의 재산을 낚시로 여기며 모든 것이 완전했던 유년의 행복을 재현한다. “그 유년의 기억들이 울창한 잎사귀를 뻗어 추억이라는 그늘을 드리우기도 하고, 뙤약볕 같은 세상살이를 막아 주기도 한 덕분”일까, 이번 시집에서는 세상살이를 낚시에 빗댄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수학 시간 사회 시간마다 꾸벅꾸벅 조는 화자는 강과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부러워하고, 같은 반 친구들에게 물고기 별명을 붙여 주며 교실을 아쿠아리움으로 만들기도 한다. 작은 피라미가 몸을 혼인색으로 물들인 현상을 보며 똑같은 교복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우리를 돌아보고, 열심히 공부할 때는 아무도 봐 주지 않다가 꼭 잠깐 딴짓할 때 엄마와 선생님에게 걸리는 것이 낚시 찌 같다고 말한다. “어른들의 말 속에는 미늘이 있어”(「미늘」) 가난과 외로움과 열등감으로 괴로웠던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지만, 어린 날 자연의 기억들은 지난했던 시절을 버텨내 세차게 흐르는 여울을 향해 헤엄치게 했다. “여물지 않은 꼬리지느러미로 단단한 얼음을 수천 번 때려 댔지 / (중략) / 때론 물살의 칼날에 생채기가 났지 추위가 강물을 얼리면 깊은 어둠으로 숨었어 겨울잠을 자며 봄을 기다렸지”(「어린 산천어의 꿈」).
“텅 빈 주먹조차 가져 보지 못”(「새 학기」)해 “얼마나 많은 어긋남의 빗줄기에 / 내 마음은 생채기를 입어야 하는 걸까”(「진심」) 토로하던 아이는 이제 없다. “나는 네가 원하는 뭐든지 될 수 있어”(「해저 연애 통신」) “세찬 여울을 온몸으로 견디며 / 폭포 너머에 있는 너를 향해 끊임없이 뛰어오”(「물고기의 전학」)르는 단단한 어른이 되어 지난날의 자신처럼 물속 깊은 곳에서 열심히 헤엄칠 준비 중인 아이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시편들을 건넨다. “괜찮아, 물고기 좀 못 잡으면 어때 / 성적 좀 떨어지면 어때 / 좋은 대학 못 가면 어때”(「괜찮겠지」)라고, 위풍도 당당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