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아는 검사 진혜원의 성찰과 통찰
“나는 한 사람의 등에 올라타 있다. 그는 짐이 무거워 가라앉으려 한다. 나는 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 다만 그의 등에서 내려오고 싶지는 않다.”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 설치되어 있는 ‘찐자생존’(Survival of the Fattest)이란 조각상에 새겨져 있는 문구다. 이는 덴마크의 조각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옌스 갈쉬요트의 작품으로, 뚱뚱한 여성이 야위고 굶주린 소년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는 모습이다.
살이 많이 찐 사람은 정의의 여신 디케처럼 눈을 감은 상태로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지만, 다른 손에는 디케 여신의 칼을 대신하여 긴 막대기를 쥐고 있다. 이 조각상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을 패러디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한 손으로는 정의를 표방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막대기를 들고 더욱 착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강자들의 탐욕과 이중적인 모습, 정의의 왜곡을 조롱하며 풍자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뜨고 법전을 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 무거운 짐을 둘러메고 위태롭게 서 있는 연약한 소년을 대한민국의 선량한 시민이라고 한다면 이 조각상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살이 찐 사람이 연약한 사람의 등에서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찐자’는 여전히 불평등한 현실에 눈을 감은 채 가증스럽게도 정의의 저울을 흔들고 있을 뿐이다.
검찰 만능주의를 넘어 민주주의의 우위를 위한
진혜원 검사의 진심!
《찐자의 저울》 저자 진혜원 검사는 현직 부산지방검찰청 소속 부부장검사로서, ‘겸허한 오징어’라는 필명으로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감한 정치사회적 의견을 과감하게 개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선이 분명한 가감 없는 발언으로 때로는 격렬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시원하고 명쾌한 논리를 선보이며 진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수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책에 수록된 몇 가지 소제목들만 봐도 이 책은 도발적 글들로 차고도 넘친다. ‘영부인과 Prosetitute에 대한 반론’, ‘선동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공수처법, 희대의 대국민 사기극’, ‘검은 유착탑은 결국 무너지는 것이 맞다’, ‘족보 없는 리더를 멸시하는 당신에게’, ‘사법과잉 사회와 탐욕의 시스템’ 등등 하나같이 핫이슈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진혜원 검사의 글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도발적이기는 하되 그 저변에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가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 그는 생각과 생각의 평화로운 경쟁을 지향하지, 한 생각이 다른 한 생각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비로소 성에 차는 사상의 정복전을 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의 변별력과 특장점은 검찰에 대한 일방적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 데 있다. 진혜원 검사는 검찰의 힘을 빌려 남을 해코지하려는 현재의 사회적 흐름에 단호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찐자의 저울〉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영부인과 Prosetitute〉, 2부 〈족보 없는 리더를 멸시하는 당신에게〉, 3부 〈고무호스로도 때리지 마라〉, 4부 〈아스파라거스 독서충〉이다. 각 부의 도입부만 읽어보아도 진혜원 검사가 말하려는 메시지가 선연하게 감지될 터이다.
1부 : Prosetitute는 조직적으로(Institutionally) 권한을 남용해 온 검찰(Prosecutors)을 지칭하려는 목적으로 내가 새로 창안한 용어다. 탈법을 일삼는 검사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활용해 왔던 ‘테라토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을 아끼는 문 대통령이 중징계를 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조금 더 점잖은 단어를 만들어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Urban Dictionary라는 사이트에서는 Prosetitute를 ‘돈만 주면 아첨하는 글을 써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현대어라고 정의되어 있기도 하다.
2부 : 우리나라에 학벌이 좋은 사람들은 많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과
소년공 출신의 정치인보다 경력과 이력이 화려한 인사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없는 게 있다. 공익에 대한 투철한 헌신과 국민을 위한 이타적 봉사이다. 그와 같은 콤플렉스가 소년공 출신의 정치인에 대한 시샘과 질투의 원천이 되어온 것이 아닐까?
3부 : 나는 대통령이 된 그분이 “다 큰 뒤에도 아버지에게 고무호스로 맞았다”고 얘기한 것을 이러저러한 계기를 통해 여러 차례 들은 바 있다. 그에 대한 반응들 가운데에는 맞을 만했으니 맞았을 것이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그런 사고방식도 선동의 산물이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맞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꽃으로든 호스로든 사람을 때리는 일이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은 없기를 바란다.
4부 :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심해서 일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고, 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소음을 싫어해 바하와 재즈 기타 같은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아스퍼거 증후군의 특징 중 하나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거나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스퍼거들은 자신들을 아스파라거스라고 부른다.
진혜원 검사는 그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생각들을 정리한 이 책을 통해 검찰의 반성과 아울러 시민들의 각성 또한 촉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아온 검찰 조직의 원죄와 병폐에 대한 부끄러움을 솔직히 토로하면서 검찰이 국민의 믿음과 애정을 되찾을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찐자의 저울》은 검찰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국민 모두가 더 늦기 전에 직접 나서야 함을 간절하게 호소하는 솔직한 성찰이자 심오한 통찰이라 하겠다.
□ 인간 진혜원을 말한다
한 사회는 다양한 생각들의 공존 위에서 성장하고, 한 인간은 다채로운 생각들을 섭취하며 성숙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같은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함몰된 사태는 다른 생각을 틀린 생각으로 단죄해 즉각 토벌에 나서는 데 그 근본적 원인이 자리해 있을 터이다.
진혜원 검사의 글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진혜원 검사는 도발은 하되 토벌은 하지 않는다. 그는 생각과 생각의 평화로운 경쟁을 지향하지, 한 생각이 다른 한 생각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비로소 성에 차는 사상의 정복전을 꾀하지는 않는다.
진혜원 검사의 글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자신이 우리 사회에서 유복한 계층에 속한다는, 혜택받은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왔다는 부끄러움을 서슴없이 토로하고 있다. 타자를 부끄럽게 만들어 쾌감을 얻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인정하는 데서 행복감을 느끼는 진혜원 검사는 그러므로 매우 이단적 유형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진혜원 검사는 내가 이제껏 함께 작업한 사람들 가운데 단연 무서운 직업에 종사해온 인물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무서움이 조금은 방향과 성격을 달리해야 할 듯하다. 내가 진혜원 검사의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그의 글에 내장된 고유한 미학과 묵직한 가치를 함부로 훼손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공희준_엮은이, 메시지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