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장르가 있다. 즉 한대漢代의 부賦, 당대唐代의 시詩, 송대宋代의 사詞, 원대元代의 곡曲, 그리고 명청대明靑代의 소설이 그것이다.
여기서 부賦는 작자의 생각이나 눈앞의 경치 같은 것을 미사여구 등 자신의 문학적 재주를 동원하여 아름답게 드러내 보이는 일종의 산문 형식이며, 사詞는 민간에서 발생하여 점차 모든 계층에 대중화된 노래 가사이다.
우리가 현재 읽고 있는 삼국지연의는 명나라 초기인 14세기 말, 나관중이 처음 지은 이래 3백여 년간 수십 차례나 수정이 거듭되다가 청나라 초기인 1679년 모종강毛宗崗에 의해 마침내 완성된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연의의 원문에는 무려 210여 수의 한시漢詩, 부賦, 사詞 등이 실려 있다.
삼국지연의를 읽어 본 독자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 한시 등은 소설의 극적인 상황이나 명장면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부분 후세 사람이 그 장면을 찬탄하는 형식으로 표현되어 독자들에게 흥미를 더해 주거나 앞의 내용을 정리해 주는 이른바 약방의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한시 등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을 온전히 체득해야만 비로소 삼국지연의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으며, 덤으로 2천여 년 동안 내려온 중국의 여러 문학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삼국지연의를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한시나 그 번역 부분은 대충대충 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한시의 내용이 너무 어렵거나 번역된 문장 가운데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한시를 정확히 번역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몇 자 안 되는 한자 속에 여러 함축된 의미를 담고 있는 한시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자의 표현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앞뒤 글의 문맥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함은 물론, 때로는 역사적 배경 지식도 필요하다. 또한 번역자의 생각이나 느낌에 따라 표현 방식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반 문장을 번역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삼국지를 번역한 작가 황석영도 그의 책 서문에서 한시의 번역은 자신이 없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을 정도이니 한시의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필자는 몇 년 전 삼국지연의를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면서도 책 속의 모든 한시를 정형시로 번역하여 출간한 적이 있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어떤 한시는 한 수 번역하는 데 며칠을 고심했으며 몇 달 뒤 다시 수정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다행히 많은 독자들이 필자의 노력을 인정해 주었다. 어떻게 그 많은 한시를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수의 시도 빠짐없이 정형시로 번역할 수 있었느냐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어떤 독자는 한시에 한자의 음을 병기해 놓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필자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한시만을 모두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한자의 음을 병기함은 물론 정확히 번역하면서도 운율에 맞춘 정형시로 가다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한시에 나오는 어려운 단어나 역사적 배경에 풀이를 달고, 그 위에 이런 한시가 실리게 된 배경을 설명하여, 이른바 『한시漢詩로 감상하는 삼국지연의』를 출간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삼국지와 관련된 수많은 작품들이 나와 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발견하지 못한 점도 필자에게 이 책을 만드는 하나의 동기 부여가 되었다.
여기서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한시를 번역함에 있어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번역자가 전혀 다른 의미로 잘못 번역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비슷한 의미를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으로 얼마든지 달리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자는 원서에 실려 있는 모든 한시를 예외 없이 정형시로 번역하려다 보니 더러는 어색한 표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원문의 의미를 가능한 쉽고 정확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원래 원서에 실려 있는 대부분의 한시에는 그 제목이 없다. 이 책에 있는 모든 한시의 제목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또한 목차를 제Ⅰ편에서 제 Ⅵ 편으로 나눈 것은 필자의 삼국지연의 완역본(전 6권)의 각 권에 실린 한시를 기준으로 편의상 나눈 것임을 밝혀 둔다.
필자는 이 책을 적어도 삼국지연의를 두 번 이상 읽어본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신 분들은 한시를 한 수 한 수 감상할 때마다 순간순간의 명장면을 회상하면서 그 기쁨을 몇 배로 느낄 것이다.
또한 한시에 조예가 깊거나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한시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삼국지연의를 읽는 것 이상의 보람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