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의 삶을 부러뜨린 나무젓가락에
먹을 묻혀 골판지에 그리는 행위
20여 년 전 어느 날, 제주 작은 어촌마을에서 만난 구부정한 허리의 제주 해녀. 왜 그리 가슴 짠하게 아름다웠을까. 그 모습을 보고 짝사랑에 빠진 작가. 시간은 다시 흐르고 5년 후, 직장을 은퇴하고 인생 2막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제주 해녀에게 푹 빠진다. 그리고 그는 해녀를 인생 3막 멘토로 삼는다.
그는 해녀의 모습만이라도 곁에 두고 싶었고 어떻게 기록할까 고심에 빠졌다. 어느날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무심코 쓰다 버린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냅킨에 짜장면 국물을 찍어서 그림을 그려봤다.
아! 바로 이거다. 해녀의 투박하면서도 거친 삶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알맞은 표현 도구가 있을까? 이날 이후 그는 여기저기 버려진 나무젓가락을 주어다 부러뜨린 뒤 먹을 찍어 역시 버려진 골판지에 해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혹자는 왜 해녀를 버려진 나무젓가락으로 골판지에 그리느냐고도 했다. 그는 남루한 생활, 죽음을 무릅써야만 하는 물질, 세상이 업신여기고 보잘것없이 대접하던 해녀의 삶에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꽃 피게 된 오늘을 보았다. 그런 삶을 표현내기에 버려진 나무젓가락과 수명을 다한 골판지야말로 환상적 도구였다. 버려지고 홀대 받는 존재 속에서 희망의 빛을 끌어내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욕심을 내려놓고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며 ‘함께’하는 삶을 추구하는 발룬티코노미스트 삶을 말한다. 발룬티코노미스트란 작가가 만든 신조어다. 봉사와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을 합친 말이다.
우리네 인생 전반부가 사자와 같은 투쟁적 삶을 통해 돈, 명예, 지위 권력을 추구했다면 인생 후반부는 자아실현과 사회적 기여를 통한 자존감의 유지를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성과지상주의적 삶에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지치곤 한다. 그럴 때 갈 곳을 잃고 우두커니 서서 먼 곳을 응시한다.
보다 큰 목표, 보다 큰 성공만을 좇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제주 해녀 이야기를 들어보자. 오늘도 거친 파도를 건너 물속으로 자맥질하는 그네들의 삶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삶의 지혜를 멘토 제주 해녀들에게서 얻었다. 제주 해녀의 삶을 통해 깨우침을 얻었다. 그 어떤 철학자보다도 인생의 철학자인 해녀. 그네들은 우리가 당연히 잊고 사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일깨운다. 그저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낼 뿐인 태도에서 배운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아주 쉬운 말로 제주 방언으로 잠언집에서 마주할만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툭 뱉어낸다.
작가는 해녀들의 지혜를 그림과 말로 전한다. 책의 왼쪽에는 작가 시점, 오른쪽은 해녀 시점의 글을 담았다. 왼쪽 페이지에서 작가는 그가 직접 마주한 인생 3막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이야기한다. 오른쪽 페이지에서는 해녀가 오늘의 물질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어떻게 했다 자랑하지 말고 앞으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사람이 되기를,
지나온 날들로 또 다른 나만의 세계를 꿈꾸지 말고
앞으로의 날들을 함께 살아 갈 얘기들로 채우는 삶이 되기를
작가의 말을 빌어 우리 앞날이 어떻고, 어때야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의 욕심에서 벗어나 ‘함께’ 간다면 어떤 두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가지 않은 길이 있다. 그렇게 지난날의 경험과 족적만으로 삶을 다 규명할 수 없다. 앞으로의 삶이 또 뒤죽박죽, 좌충우돌의 삶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충분히 행복하게 헤쳐 나갈 거라는 확신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해녀의 삶에서 ‘욕심을 내려놓고 함께’라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기 때문이다. 오늘 물질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그네들은 물질은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생의 업을 통해 깨우쳤다.
해녀들은 알고 있다. 저 멀리, 더 깊이, 더 욕심을 내면 오늘 물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욕심내지 않는다. 물질 수확이 줄어들었더라고 오늘 이만큼이라도 잡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어제 물질 다르고, 오늘 물질이 다르고, 또 내일 물질은 어찌 될지 몰라도 물질에 충실하다. 동료 해녀와 함께라면 컴컴한 물속도 두렵지 않다. 그런데 함께하던 해녀 동료들이 더 이상 물질을 못 한다. 어느새 해녀 무리를 이끌던 해녀 대장님은 쇠잔해 가는 몸을 이끌고 물질 나온 우리가 안쓰러워 바닷가로 마중 나온다.
‘언젠가 나도 물질을 못 나가겠지?’ 마음이 무거워지다가도 오늘 망사리를 채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동료 해녀의 숨비 소리에 행복하다. 봄날, 숨비 노래를 함께 부르며 또 물속으로 들어간다. 오늘 잡은 것이 별로 없어도 큰 걱정은 안 한다. 요 며칠 잡아 놓은 게 꽤 되니까. 다음 물질에는 많이 잡는다는 희망이 있기에.
현재에 만족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의 삶. ‘카르페 디엠’이란 이를 말하는 게 아닐까? 어제는 심술을 부리던 바다가 오늘은 잔잔하다면 바다가 나를 품어준다고 기분 좋다고 말하는 해녀. 그네들은 기분 좋은 바다, 기분 좋은 물질, 기분 좋은 망사리면 만족한다. 오늘도 물때 맞은 이른 아침 물질을 나가는 해녀의 뒷모습에서 삶의 향연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