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1892~1940)은 바이마르공화국 시대 독일의 유대계 비평가이자 철학자로 문학이론은 물론 철학, 신학, 심리학, 정치학, 인류학 등 여러 분야에서 폭넓은 저술 활동을 했다. 특히 영화와 사진 등 대중매체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물들은 1960년대 이후 서구 문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소개됐으며, 80년대에 들어선 대학에서도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죄르지 루카치와 이른바 ‘비판이론’으로 알려진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 학자인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과 함께 다뤄지기 시작했다.
1930년대 벤야민은 단지 매체기술이 발달하면서 고급예술이 퇴조하고 대중문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계급적 실체가 모호한 비정치적 "소비대중"이 전체주의 국가가 주조하는 정치적 "민족공동체"라는 이데올로기에 흡수되는 역사적 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벤야민의 구상은 바로 "정치를 심미화"하는 전체주의 국가, 대중에게 "표현"할 권리만을 부여한 채 신체와 정신을 눈멀게 하는 파시즘 체제에 맞서 이 대중이 스스로 깨어나고 자각하게끔 하는 "예술의 정치화"를 위한 전략을 세우는 일이었다.
최성만 이화여대명예교수(전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벤야민 선집의 국내 번역을 기획, 주도하며 20년 이상 힘을 쏟아왔다. 1990년대 후반에 기획해 2007년부터 도서출판 길에서 내온 ‘발터 벤야민 선집’은 총 15권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저작물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국내 벤야민 번역의 표준으로 정착”되었다 평가받는다.
2022년 27년간 재직해온 이화여자대학교를 떠나며 이번 논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한국에서 벤야민 이론의 수용사를 비롯해 그가 평생 동안 연구해온 발터 벤야민의 주요 개념들, 미메시스 · 비평 · 기억 이론 등을 다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