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빵은 팬케이크처럼 푹 퍼진 빵이었어요. 발효하지 않은 무발효빵같이 납작했습니다. 서로 붙어 있는 두 개의 납작빵에 어린 딸은 레고 조각을 올려놓고 웃었습니다.”
저자는 첫 빵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 7일 동안 컬처를 키우고, 다시 밀가루, 물, 소금, 르방을 섞어 빵 반죽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기공이 숭숭 뚫리
고 빵빵하게 잘 부푼 르방빵을 구울 거라는데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는 베이커의 재료 배합표와 제빵법을 여러 번 읽어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빵의 실패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첫 빵의 실패를 시작으로 좋은 빵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빵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밀가루의 중요성, 제빵법 특히 발효법의 중요성 등을 알면 알수록 빵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갔다.
어떤 빵이 좋은 빵일까? 좋은 빵의 기준을 로컬 재료인 우리 밀로 구운 빵, 밀 특유의 향과 풍미가 살아 있는 빵, 장시간 발효한 빵, 맛있는 빵, 빵의 특성을 잘 살린 빵이라고 정리했다. 단 두 가지로 줄이면, 건강하고 맛있는 빵이다. 첨가제 없이 좋은 재료로 오랜 시간 발효해서 구우면 건강한 빵이 된다. 하지만 건강에 좋은 빵만으로는 부족했다. ‘건강에 좋으면서 맛이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맛있는 빵, 미식의 빵 굽기는 결코 쉽지 않다.
빵맛은 어디에서 올까? 빵맛과 풍미의 근원은 네 가지다. 밀 고유의 맛과 향,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풍미, 빵을 굽는 동안 마이야르 반응으로 생성되는 풍미, 그리고 견과류와 과일, 치즈 등 충전물의 풍미이다. 풍미는 입으로 느끼는 물리적 느낌인 식감, 음식을 씹을 때 나는 소리, 음식의 온도, 생김새, 음식과 관련된 추억들을 처리하여 뇌가 만든 이미지로, 단순히 혀에 있는 맛봉오리로 느끼는 맛 이상이다. 오랫동안 음식의 풍미는 혀로 느끼는 맛과 코로 감지하는 향이라 여겨졌지만, 최근 신경미식학 연구로 미각과 후각뿐 아니라 청각, 촉각, 시각 등 모든 감각 기관이 인지한 결과인 것으로 밝혀졌음을 소개하였다.
우리밀과 수입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리밀로는 왜 빵이 잘 안된다고 할까? 고대밀과 토종밀은 뭘까? 밀이 정말 셀리악병의 원인일까? 인류는 왜 밀 농사를 시작했을까? 호밀은 밀과 어떻게 다른가? 글루텐은 무엇인가? 비타민C가 글루텐을 강화한다는데 어떤 기작(祈綽) 때문일까? 제빵효모빵과 르방빵의 차이는 뭘까? 리퀴드 르방과 스티브 르방의 차이는 뭘까? 르방 속엔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을까? 먹이에 따라 미생물 군집은 달라질까? 빵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졌고 노트북의 “밀” 폴더에는 많은 자료가 쌓여갔다. 이 책은 빵맛의 근원과 좋은 빵을 탐색해 가는 여정 중에 맞닥뜨린 궁금증에 대한 저자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기록이다.
〉〉각 장별 소개
제1부는 빵의 가장 중요한 재료인 밀과 밀가루가 빵맛과 풍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본다. 밀의 구조와 성분, 밀의 진화와 셀리악병, 빵을 결정하는 전분과 글루텐, 수분율에 따른 글루텐 구조의 변화, 빵의 뼈대가 되는 글루텐과 속살 격인 전분, 제분 방식에 따른 밀가루 특성의 차이와 품질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제2부와 제3부는 빵맛과 풍미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두 가지 제빵 공정을 담았다. 제빵 공정은 빵맛과 풍미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단계이다. 제2부는 빵 발효의 두 가지 경로 중 전통적인 발효 방법인 르방 발효와 최신 기술인 제빵효모 발효를 다룬다. 최근 인기 빵인 천연발효종인 르방빵의 미생물과 유산균의 유형, 스타터 관리 등의 기술을 소개했다. 또 맛과 향이 단연 돋보이는 효모빵이 잘 부푸는 이유 등 발효는 미생물 대사 작용의 결과이므로 미생물 관련 내용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제3부는 빵 공정의 마지막 단계인 굽기의 영향을 분석했다. 겉바속촉에 매료되는 이유와 그 비밀, 크러스트 대 속살의 비율, 오직 빵만이 낼 수 있는 풍미인 마이야르 반응 등 굽기에서 식감과 풍미, 모양 등을 다루었다. 맛있는 빵을 굽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제빵 공정을 잘 조절함으로써 빵의 모양, 식감, 맛과 풍미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