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전쟁이 가져온 여파는 부지불식간에 러시아를 덮쳤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편마저 설상가상으로 끊겼다.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 네 가족은 머리를 맞대고 고심했다. 그럼에도 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멈춰진 시간 속 자그마한 행복을 담아 보기 위해 말이다.
『러시아에서는 여행이 아름다워진다』는 그러한 노력을 담은 책이다. 집안에만 갇혀 살던 3개월, 베란다에 둘러앉아 머릿속으로나마 그린 여행이 이제 진짜 날개를 달았다. 제재가 풀리기 시작하며 집 주변 성당에서 모스크바 근방의 소도시로 조금씩 반경이 넓어졌다. 넘기는 페이지마다 저자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눈 쌓인 이국적 풍경이 앞다투어 펼쳐진다. 자동차를 타고 떠난 겨울 나라의 깨끗한 민낯은 독자들에게도 눈 뗄 수 없는 낭만을 선사할 것이다.
“코끝이 언다, 그래도 함께라 좋다!”
낯선 눈과 얼음의 나라에서 만난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 새로운 행복들!
모든 것이 멈추었을 때
길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자주 가던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끝나지 않는 전쟁 통에 그해 겨울은 유독 더 혹독했다. 멀리 나아가기에는 마땅치 않은 나날들. 하지만 일상을 멈출 수 없었다. 지친 마음을 추슬러 다시금 천천히 떠나보기로 한다.
처음이라 두렵지만, 설레기도 해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도시, 이제는 새 학교에도 적응하기 시작한 아이들이다. 부지런히 자라나는 나이테에 다채로운 경험을 새겨주기 위해 자그마한 여행을 계획했다. 갖가지 특색을 담은 박물관, 역사를 간직한 수도원 등 추운 겨울 곳곳에 숨겨진 따스함을 찾아가 본다.
어쩌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행복의 조건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오랜 명화에서 마주한 시선, 깊이 있는 고전 속 한 줄.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햇볕 가득한 창문 너머. 하루가 채 안 되는 시간조차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데 충분하다. 우리 가족은 또 어떤 행복을 마주하게 될까. 세상에는 아직 숨겨진 반짝거림이 무궁무진하다.
마음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를 들어봐
여행객도 잘 찾지 않는 고요한 시골, 조용한 숲 한가운데서야 비로소 만나게 된 ‘내’가 있다. 꽁꽁 언 호수를 가족의 손을 잡고 건너온 기억 역시 마찬가지다. 온몸으로 맞닥뜨린 이러한 경험은 마음 곳곳에 뿌리내려 훗날 어려움을 헤쳐나갈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무지개는 뜨니까
서툴게 둥지를 튼 모스크바에서의 10년. 돌이켜 깨달은 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이래도 봄은 온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걱정 없이 여행하게 될 그 날을 위해 마음을 넉넉히 먹기로 한다. 여전히 그대로인 현실이지만, 결국 인생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